제로 투 원 (ZERO to ONE) 독서필기

<ZERO to ONE> 을 읽는 내내 나는 이 책을 꼭 추천해야겠다는 생각과 도대체 추천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를 고민해왔다. 이게 웃긴게 <ZERO to ONE>은 센세이션이다 못해 이미 신드롬으로 변해버렸고 세계 각국의 일부 창업자들로부터 성경 (The Book) 처럼 떠받들려온지도 오래인 책이니 일개 공돌이가 오늘날에야 이 챍을 읽고 나서 감격에 겨워 책을 읽는 내내 추천글을 어떻게 쓸지를 치열하게 고민해왔다니.

결국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추천글을 아예 독서필기로 써버리는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개인적인 용도이다. 적어도 두번째로 읽으며 필기를 남겨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는다는 다소 개인적인 생각도 들고, 개인적인 자료들도 챙기고. 추천글로도 충분히 훌륭하지 않겠는가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필기를 추천글로 사용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도전은 독서필기가 얼마나 매력적이게 보일 수 있을거냐 하는 질문인 것 같다. 문제는 이 책은 매 페이지마다 재미있고 매 페이지마다 주옥 같았으며 지혜의 빛발로 번뜩였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평가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시대 그 많은 유명인사들이 이 책을 떠받드는 것으로 보아 나만 이런 얄팍한 생각을 한게 아닌 것 같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소위의 “추천글”은 오히려 이미 이 책을 정독하셨고 애독하셨던 독자들에게 가장 가치가 있을 것 같다.

어쨌거나 나는 꼭 이 독서필기를 써야겠다. 일단 나 자신을 위해서.

잡스형님이 별세로 비워둔 신단을 엘론 머스크가 차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는 페이팔의 다른 창업자인 피터 틸 역시 엘론 머스크 못지 않을 만큼이나 이 시대의 우상임이 틀림 없음을 느끼게 되었다. 역시 ‘페이팔 마피아’는 후덜덜 하구나!


저자소개:

Peter Thiel

실리콘밸리를 움직이는 파워그룹 ‘페이팔 마피아’의 대부. 손꼽히는 스타트업 성공 사업가이자 벤처캐피탈 투자자.

기업가이자 투자자.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스탠퍼드 로스쿨을 졸업했다. 1998년 전자결제시스템회사 페이팔(PayPal)을 설립해 CEO로서 회사를 이끌었으며, 2002년 페이팔을 상장시켜 빠르고 안전한 온라인 상거래 시대를 열었다. 2004년 그는 첫 외부 투자로서 페이스북에 투자했고 페이스북 이사로 활동했다. 같은 해 소프트웨어 회사 팰런티어 테크놀로지(Palantir Technologies)를 출범시켰다. 팰런티어는 컴퓨터를 활용해 국가 안보 및 글로벌 금융 등의 분야에서 애널리스트들을 돕고 있다. 틸은 또한 링크트인(LinkedIn)과 옐프(Yelp)를 비롯한 수십 개의 성공적 기술 스타트업에 초기 투자자로 참여했다. 이들 기업 중 다수는 ‘페이팔 마피아’라는 별명이 붙은 전직 동료들이 운영하고 있다. 페이팔 마피아는 페이팔 멤버들이 실리콘밸리를 움직이는 파워그룹으로 성장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피터 틸은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 회사 파운더스펀드(Founders Fund)의 파트너이기도 하다. 파운더스펀드는 스페이스엑스(SpaceX) 및 에어비엔비(Airbnb), 옐프(Yelp) 등 페이팔 마피아 멤버들이 창업한 회사 및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는데, 이런 점이 틸을 페이팔 마피아의 대부라 불리게 한다.

그는 젊은이들에게 학교 교육보다 학습을 우선하라고 권함으로써 전국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틸 장학금(Thiel Fellowship)을 만들어 장학생으로 선정된 학생에게 대학교를 중퇴하고 창업하는 조건으로 10만 달러를 지원하기 때문이다. 그가 이끌고 있는 틸 재단(Thiel Foundation) 역시 기술 진보와 미래에 대한 장기적 생각을 촉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추천평:

세상에 가치를 창조하는 방법에 관해 완전히 새롭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피터 틸은 여러 혁신적 회사를 세웠다. 《제로 투 원》은 그 노하우를 보여준다. —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엑스 및 테슬라 CEO

피터 틸은 성공한 기업가이자 투자자일 뿐만 아니라 우리 시대 최고의 지식인 중 한 명이다. 왜 그런지는 이 책을 읽어보면 엿볼 수 있다. — 타일러 코웬, 조지메이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거대한 침체>저자

똑 소리 나게 명료하고 이성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책이다. 장차 기업가가 되려는 포부를 가진 사람들뿐만 아니라 도처에 만연한 암울한 세계 전망의 대안을 찾는 모든 이들이 읽어야 할 책이다. — 〈이코노미스트〉


본문

공공 부문에서도, 사기업에서도 이미 거대한 행정 관료주의가 판치는 세상에 새로운 길을 찾겠다고 하면 기적을 바라는 사람처럼 비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이 다른 종들과 구별되는 것은 기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기적을 우리는 ‘기술(technology)’ 이라고 부른다.

기술이 기적인 이유는 ‘더 적은 것으로 더 많은 일을’ 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모든 혁신은 그동안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낸 것이므로 혁신의 방법을 구체적 단어로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실제로 내가 발견한 가장 강력한 패턴은 성공한 사람들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가치를 찾아낸다는 사실이였다.

뛰어난 생각은 흔치 않다. 하지만 천재적인 아이디어보다 더 희귀한 것은 바로 용기다.

미래가 중요한 것은 그때가 되면 세상이 지금 우리가 보는 세상과는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앞으로 100년간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면, 미래는 아직 100년도 더 남은 일이 된다. 하지만 앞으로 10년간 많은 것이 급격히 바뀐다면, 미래는 바로 코앞에 와있는 셈이 된다.

이런 글로벌화의 패러다임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중국이다. 중국은 그동안 선진국에서 성공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노골적으로 카피해왔다.

한편 수직적 진보를 한 단어로 나타내면 ‘기술(technology)’ 이 된다.

예컨데 1815년에서 1914년까지는 급격한 기술 발전과 글로벌화가 동시에 이뤄진 시기였다. 제1차 세계대전부터 키신저가 중국을 방문한 1971년까지의 시기에는 기술은 빠르게 발전했지만, 글로벌화는 많이 진행되지 않았다. 1971년 이후에는 글로벌화는 빠르게 진행되었으나, 기술 발전은 대부분 IT 분야로 한정되었다.

세계를 소위 ‘선진국’(developed) 과 ‘개발도상국’(developing) 으로 나눈다는 것부터가 선진국들은 이미 성취할 수 있는 것을 모두 이루었고 빈곤국들은 그저 따라잡아야 한다는 뜻을 포함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통념에 반대되는 의견에 관한 내 대답도 바로 이 부분에 관한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로벌화가 전 세계의 미래를 결정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진실을 말하자면 기술이 더 중요하다.’ 중국, 인도가 지금의 미국과 똑같은 삶을 살려고 한다면 환경적 재앙이 초래된다. 부를 창출하려고 전 세계에 옛날 방식을 전파한다면 세상은 부유해지기는커녕 황폐화되고 말 것이다. 자원이 희소한 세상에서 새로운 기술 없이 글로벌화를 계속해나갈 방법은 없다.

고대인들은 정적인 균형이 계속되는 제로섬(zero-sum) 사회에 살았다. 그런 사회에서 성공이란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었다.

1760 년대에 증기기관이 출현하면서 현대사회는 갑자기 폭주하는 기술적 진보를 경험했다. 이런 추세가 대략 1970년대까지 이어진 결과, 우리는 이전 세대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풍요로운 사회를 물려받게 되었다.

우리 부모 세대와 조부모 세대, 그러니까 1960년대 말을 제외한 모든 세대는 이 같은 진보가 계속해서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즉 주 4일 근무제가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고, 에너지 가격이 너무 낮아서 단위 가격을 매기기도 힘들게 되기를 바랐으며, 달에서 여름휴가를 맞이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스마트폰은 우리 주변만 잊게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이 이상하게도 구식이라는 사실까지 잊어버리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부모 세대가 더 나은 미래를 꿈꾼 것이 잘못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더 나은 미래가 저절로 찾아올 거라고 생각한 점은 잘못이었다. 지금 우리는 21세기를 20세기보다 더 평화롭고 번창하는 시대로 만들어줄 새로운 기술을 상상하고 또 창조해내야 하는 어려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모험, 즉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며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정치에서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과학에서는 영국의 왕립학회, 비즈니스에서는 페어차일드 반도체(Failchild Semiconductor)의 ‘8인의 배신자들(쇼클리 반도체 연구소에 스카우트되었다가 따로 나와서 페어차일드 반도체의 전신을 세운 8명의 연구진에게 붙은 별명 — 옮긴이)’ 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변화시킨 주체는 일종의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소규모 집단들이었다. 그 이유를 가장 쉽게 설명하자면, 소규모가 아니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큰 조직에서는 새로운 것을 개발하기가 어렵고, 혼자서 새로운 것을 개발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관료제적 계급 조직은 행동이 굼뜰 수밖에 없고, 이해관계가 단단히 맞물려 있는 조직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게 된다. 변비에 걸린 것처럼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조직에서는 실제로 일을 하기보다는 일이 진척되고 있다는 신호만 내보내는 편이 승진에는 오히려 더 유리하다 (지금 다니는 회사가 이렇다면 당장 그만두는 편이 낫다).

그러나 반대편 극단을 보면, 외톨이형 천재는 예술이나 문화의 고전을 남길지는 몰라도 산업 하나를 통째로 일굴 수는 없다. 신생기업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한다. 다만 그 규모는 실제로 뭔가를 할 수 있을 만큼 작게 유지되어야 한다.

좀 더 적극적으로 정의를 내려보면, 신생기업이란 지금과는 다른 미래를 만들기 위한 당신의 계획을 납득시킬 수 있는 최대치의 사람들이다. 신생기업이 가진 강점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생각’이다. 새로운 생각은 ‘민첩함’ 보다도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규모가 작아야 생각할 공간이 생긴다.

‘신경제 (New Economy)’ 라고 하는 일반의 통념은 ‘이윤’ 처럼 재미없는 기준보다는 ‘페이지뷰’ 가 더 믿을 만하고 진취적인 재무 지표라고 인정했다.

1990년대의 인터넷 광풍은 1929년 대공황 이후 최대 규모의 버블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때 배운 교훈들은 아직까지도 우리의 마음에 남아 기술에 대한 모든 시각을 정의하고 또 왜곡하고 있다. 그 왜곡을 뛰어넘어 올바른 시각을 갖고 싶다면, 우선 과거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부터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눈에 살펴보는 1990년대

1990년대는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우리는 1990년대가 번영을 구가한 낙관적 시대였으나, 어찌어찌하다 보니 인터넷 호황과 몰락으로 막을 내렸다고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1990년대의 많은 부분은 우리의 향수가 기억하는 것처럼 그렇게 신나지 않았다. 1990녀대 말, 18개월간의 닷컴 열풍을 불러오게 된 그 당시 암울했던 전 세계적 분위기를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1990년대는 한바탕 축제분위기 속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는데, 1990년대 중반까지 미국 경제가 침체기에 빠졌던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하락 국면은 1991년 3월에 끝났지만, 회복은 더뎠고 실업률은 1992년 7월까지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이후로 제조업 경기는 단 한 번도 온전히 반등하지 못했다. 서비스 경제로의 이행은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고, 고통을 수반했다.

1992년부터 1994년 말까지는 총체적 불안의 시기였다. 케이블 뉴스에는 모가디슈에서 죽은 미국 병사들의 사진이 게속 나왔다. 일자리가 멕시코로 빠져나가면서 글로벌화와 미국의 경쟁력에 대한 불안감도 심화되었다. 이런 회의적인 분위기는 1992년 대선에서 현직 대통령 조지 부시를 물러나게 만들엇고, 로스 페로(Ross Perot)는 1912년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이후 제3당 출신으로는 가장 많은, 20퍼센트에 가까운 득표를 기록했다. 록밴드 너바나와 그런지록, 헤로인에 심취한 문화가 실제로 무엇을 반영하고 있었든 간에, 결코 희망이나 자신감의 표출은 아니었다.

실리콘밸리 역시 부진을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였고, 반도체 전쟁은 일본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인터넷은 비상하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1992년 말이 되기 전까지는 인터넷의 상업적 용도에 제한이 있기도 했고, 아직 사용자 친화적인 웹 브라우저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스탠퍼드대학교에 입학한 1985년에 가장 인기 있었던 전공이 컴퓨터과학이 아니라 경제학이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많은 것이 짐작될 것이다. 대학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기술 분야란 특이한 것, 심지어 주변적인 것으로 보였다.

이 모든 것을 바꿔놓은 게 인터넷이었다. 1993년 11월 모자이크(Mosaic) 브라우저가 공식 발표되면서 일반인들도 온라인에 접속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후 모자이크는 넷스케이프(Netscape) 가 되었고, 넷스케이프는 1994년 말에 네비게이터(Navigator) 브라우저를 출시했다. 네비게이터를 채택하는 사람이 급속히 늘어나면서(1995년 1월에 20퍼센트이던 시장 점유율은 12개월도 지나기 전에 거의 80퍼센트에 육박했다) 넷스케이프는 아직 이익도 나고 있지 않던 1995년 8월에 이미 기업공개를 단행할 수 있었다. 5개월 만에 넷스케이프 주식은 주당 28달러에서 174달러로 수직 상승했다.

다른 기술 기업들도 호황을 맞기는 마찬가지였다. 야후(Yahoo!)는 1996년 4월에 8억 4,800만 달러의 시장 가치를 인정받았으며 상장되었고, 아마존은 1997년 5월에 4억 3,800만 달러에 상장되었다. 1998년 봄이 되자, 각 회사의 주가는 4배 이상으로 뛰어 있었다. 회의적인 사람들은 인터넷 기업이 비(非) 인터넷 기업보다 매출이나 이익이 몇 배나 높다는 주장을 의심했다. 그리고 그들은 어렵지 않게 시장이 미쳤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런 결론이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문제는 엉뚱한 데서 이런 지적이 나왔다는 점이었다. 1996년 12월(실제로 버블이 붕괴된 것보다 3년 이상 앞선 시점이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 (Alan Greenspan) 은 ‘비이성적 과열’ 이 “자산 가치를 과도하게 높여놓았을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그린스펀의 이 발언으로 미국의 주가가 폭락했다 — 옮긴이). 기술 부문 투자자들이 과열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정말로 그 정도까지 과열되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당시 나머지 국가들의 경제 사정은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7년 7월, 금융위기가 동아시아를 강타했다. 정실 자본주의(Crony capitalism) (기업, 은행, 정부 간의 유착 관계, 족벌 경영 등 부정부패와 직결되는 경제계의 패거리 문화 — 옮긴이) 와 대규모 외화 부채는 태국과 인도네시아, 한국 경제를 무릎 꿇렸다. 뒤이어 1998년 8월에는 루블화 위기가 따라왔다. 만성적인 재정 적자에 시달리던 러시아는 루블화를 평가 절하했고, 국가 부채에 대해 디폴트(채무 이행 불능)를 선언했다. 미국의 투자자들은 1만 개의 핵무기를 보유한 국가가 돈이 바닥났다는 사실에 불안을 느꼈고, 다우지수는 단 며칠 만에 10퍼센트 이상 곤두박질 쳤다.

사람들의 걱정은 옳았다. 루블화 위기는 연쇄반응을 촉발했고, 과도한 레버리지(차입 투자) 전략을 펼치고 있던 헤지펀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ong-Term Capital management, LTCM) 를 무너뜨렸다. 롱텀캐피털은 1998년 하반기에만 46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는데, 그러고도 1,000억 달러 이상 부채를 안고 있었다. 결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개입했고, 대규모 구제금융을 실시하는 한편, 이 사태가 경제 전체의 재앙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대대적인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유럽도 사정이 안 좋기는 마찬가지였다. 회의론과 무관심 속에 유럽은 1999년 1월 유로화 유통을 시작했다. 유로화는 거래 첫날 1.19달러까지 상승했지만, 2년 후에는 0.83달러로 내려앉았다. 2000년대 중반에는 G7 중앙은행장들이 수십 억 달러의 시장 개입을 통해 유로화의 가치를 지탱해줘야 했다.

반짝 불고 사라졌던 닷컴 열풍이 1998년 9월부터 시작된 데는 다른 모든 것들이 가망 없어 보인다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작용했다. 구경제(Old Economy)로는 글로벌화라는 난관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미래가 오려면 뭔가 하나쯤은, 그것도 제대로 먹히는 게 있어야 했다. 다른 대안이 없었던 당시로서는 인터넷경제라는 신경제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닷컴 열풍

이 열풍은 결코 지속될 수가 없는 종류라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았어야 했다. 소위 ‘성공적’ 이라는 회사들은 대부분 기업이 성장할수록 돈을 ‘잃는’ 일종의 반(反)사업적 사업 모형을 채용한 것 같았다. 그러나 음악이 연주되고 있는데 사람들이 춤을 춘다고 비난하기는 어렵다. 이름 뒤에 닷컴(.com)만 붙여도 하룻밤 사이에 회사의 가치가 2배가 된다면, 비이성적이 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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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팔 열풍

당시 우리는 이 목표를 이루려면 자금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곧 인터넷 열풍이 사그라질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곧 다가올 붕괴 사태에도 우리 회사가 살아남을 만큼 투자자들이 우리에게 깊은 신뢰를 보여줄 것 같지는 않았기에, 우리는 아직 자금을 모집할 수 있을 때 재빨리 움직이기로 했다. 2000년 2월 16일, <월스트리트저널>에 기사 하나가 실렸다. 페이팔이 바이럴 마케팅(Viral Marketing)을 통해 성장을 거듭하고 있고, 5억 달러의 가치가 있다는 내용이었다.

다음 달 우리가 1억 달러의 투자금을 모집했을 때, 제일 크게 투자한 투자자는 <월스트리트저널>이 어림짐작으로 대충 끄적여 놓은 수치를 틀림없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다른 투자자들은 그보다 더 성급했다. 한국의 한 회사는 협상을 시도하거나 계약서를 작성할 생각도 하지 않고 500만달러나 되는 돈부터 송금해주었다. 내가 그 돈을 돌려주려고 했지만 그들은 송금받을 계좌를 알려주지 않았다.) 2000년 3월, 그렇게 모집된 투자금은 페이팔을 성공시키는 데 필요한 시간을 벌어주었다. 우리가 계약을 끝내자마자 버블이 붕괴됐다.

닷컴 붕괴가 남긴 교훈

“2000년에는 파티가 끝났다고들 하니까. 이런! 시간이 없어. 오늘 밤은 1999년처럼 파티를 할 거야!”

—— 팝 아티스트 프린스

2000년 3월 중순, 나스닥은 5,048포인트로 정점을 찍은 후 급락해 4월 중순에는 3,321포인트가 되었다. 2002년 10월, 나스닥은 1,114포인트로 바닥을 쳤다. 이때쯤에는 온 나라가 이미 시장 붕괴는 1990년대의 기술 낙관론에 대한 일종의 ‘신의 심판’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풍요로운 희망의 시대’ 에는 ‘탐욕에 미쳤던 시대’ 라는 새로운 이름이 붙었고, 그 시대는 완전히 끝난 것으로 선언되었다.

이제는 미래를 위한 희망은 기술이 아니라 글로벌화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 있었던 ‘벽돌(bricks)에서 클릭(click)으로’ 의 이행이 기대했던 효과를 내지 못하자, 투자자들은 다시 벽돌(주택 공급)과 브릭스(BRICs) (글로벌화) 로 되돌아갔다. 그 결과 또 다른 버블이 양산되었고, 그게 바로 ‘부동산’ 이었다.

기술에 버블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1990년대는 자만의 시대였다. 사람들은 0에서 1로의 진보를 믿었다. 하지만 1에 도달한 벤처기업은 몇 되지 않았고, 대부분은 그저 떠들기만 하다가 끝이 났다. 그러나 당시 사라들은 우리가 더 적은 것으로 더 많은 일을 해내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2000년 3월의 시장 고점은 분명 무모함이 정점에 달한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또 하나 무시할 수 없는,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그 시기가 현실을 가장 똑바로 봤던 때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먼 미래를 내다보았고, 그 미래에 제대로 안착하려면 훌륭한 신기술이 얼마나 많이 필요할지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그 신기술을 만들어낼 능력이 된다고 판단했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신기술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신기술을 확보하려면 1999년 식의 자만과 과열도 약간은 필요할지 모른다. 차세대 기업들을 세우려면 버블 붕괴 이후에 만들어진 절대 원칙들을 버려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반대의 생각들이 자동적으로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군중의 광기를 일방적으로 거부한다고 해서 광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봐야 한다. 비즈니스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중에서 과거의 실수에 대한 잘못된 반응은 얼마나 되는가? 진정으로 남들과 다른 사람은 다수에게 반대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행복한 회사는 모두 다르다

앞서 말한 ‘통념에 반하는 견해에 대한 질문’을 비즈니스에 적용하면 이렇게 된다. ‘정말 가치 있는 기업인데 남들이 세우지 않는 회사는 무엇인가?’

아주 큰 사업이라고 해도 나쁜 사업일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항공사들은 매년 수백만 명의 승객을 실어 나르면서 수천억 달러의 가치를 창출한다. 하지만 2012년 편도 요금 평균이 178달러인 데 반해, 항공사들이 승객 1인당 벌어들인 수익은 겨우 37센트에 불과했다. 이를 구글과 한번 비교해보자. 구글은 항공사들보다 적은 가치를 창출하지만 보유 가치는 훨씬 크다. 구글은 2012년에 500억 달러를 벌어들였지만 (항공사들은 1,600억 달러), 매출의 21퍼센트가 이익이었다. 이익률로 따지면 그해 항공사들보다 100배나 높은 수익을 낸 셈이었다. 이렇게 돈을 잘 벌어들이다 보니 구글의 현재 가치는 미국의 모든 항공사의 가치를 합한 것보다 3배나 크다.

항공사들은 서로 경쟁하지만 구글은 경쟁자가 없다. 이런 차이를 경제학자들은 간단한 모형 두가지로 설명하는데, 바로 ‘완전경재(perfect competition)’ 과 ‘독점(monopoly)’ 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완전 경쟁 하에서는 ‘그 어느 회사도 경제적 이윤을 창출할 수 없다’.

완전경쟁의 반대는 독점이다. 경쟁하고 있는 회사는 시장 가격에 물건을 팔 수밖에 없지만, 독점기업은 시장을 손에 쥐고 있으므로 스스로 가격을 결정할 수 있다. 독점기업은 경쟁자가 없으므로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수량과 가격으로 물건을 생산한다.

경제학자에게는 모든 독점이 똑같아 보인다. 정직하지 못한 방법으로 경쟁자를 몰아냈건, 정부로부터 면허를 획득했건, 또는 혁신을 통해 최고의 자리에 올랐건 상관없이 말이다. 이 책에서는 불법적인 악덕 기업이나 정부의 비호를 받는 기업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 책에서 ‘독점’ 이라고 할 때는 자기 분야에서 너무 뛰어나기 때문에 다른 회사들은 감히 그 비슷한 제품조차 내놓지 못하는 회사를 가리킨다. 구글은 0에서 1을 이룬 대표적인 회사다. 구글은 2000년대 초반 이후 검색 분야에서 경쟁자가 없었고, 마이크로소프트와 야후를 크게 따돌렸다.

미국인들은 경쟁을 신성시하며 경쟁 덕분에 우리가 사회주의자들처럼 가난하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자분주의와 경쟁은 서로 상극이다. 자본주의는 자본의 축적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완전경쟁 하에서는 경쟁을 통해 모든 이윤이 사라져버린다. 따라서 기업가들이 명심해야 할 사항은 분명하다. ‘지속적인 가치를 창출하고 또 보유하고 싶다면, 차별화되지 않는 제품으로 회사를 차리지 마라.’

외부에서 보기에는 모든 회사가 어느정도 비슷해보일 수 있기 때문에 회사들 사이에 아주 적은 차이밖에 없다고 느끼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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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실은 그보다 훨씬 더 양분되어 있다. 완전경쟁과 독점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존재하며, 대부분의 사업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양극단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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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의 원인은 시장 조건을 다들 자의적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독점기업이나 경쟁 기업 모두 진실을 왜곡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독점기업들이 거짓말하는 이유

독점기업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한다. 그들은 거대한 독점 사실을 자랑했다가는 감사를 당하고, 조사를 받고, 공격받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독점기업들은 계속해서 독점 이윤을 유지하고 싶기 때문에 독점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방법이 (존재하지도 않는) 경쟁자의 힘을 과장하는 것이다.

구글은 독점기업일까? 이것은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어느 분야’ 에서 독점이라는 말인가?

구글이 미국의 검색엔진 광고 시장을 완전히 독점한다고 하더라도, 전 세계 광고 시장을 기준으로 하면 겨우 3.4퍼센트를 차지할 뿐이다. 이렇게 보면 구글은 치열한 경쟁환경 속의 아주 작은 참가자로 보인다.

이번에는 구글을 다각적 기술 기업으로 보면 어떨까? … 하지만 구글의 매출의 95퍼센트는 검색엔진에서 나온다.

전 세계적으로 소비자 기술 제품 시장은 9,640억 달러 규모이므로 구글은 그 중 0.24퍼센트 이하를 차지하고 있는 셈인데, 이렇게 되면 독점은 고사하고 의미 있는 시장 참가자라고 할 수도 없다. 구글은 스스로를 기술 기업의 하나라고 정의함으로써 원치 않는 모든 관심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경쟁 기업이 거짓말하는 이유

독점기업이 아닌 회사들은 정반대의 거짓말을 한다. “우리는 이쪽을 꽉 잡고 있어요.” 기업가들은 언제나 경쟁의 크기를 축소해서 말하는 경향이 있다.

새로 차린 대부분의 식당이 1, 2년 내에 망한다는 뉴스를 듣게 되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왜 내가 내는 식당은 그렇지 않을 것인지 이유를 찾아내게 된다. 우리는 그 이유가 정말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대신, 나는 왜 예외인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설득하려고 애쓴다. 하지만 잠깐 하던 생각을 멈추고 팰로앨토에 다른 음식들보다 영국음식을 특별히 먹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인지부터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없을 가능성도 매우 크다.

똑같은 원칙은 창의성이 필요한 업계에도 적용된다. 세상의 어떤 시나리오 작가도 자신의 이번 시나리오가 이미 만들어졌던 영화들을 재탕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번 영화는 다양한 흥미 요소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조합한 영화예요.” 그리고 실제로 그럴 수도 있다. …… 이런 영화는 분명히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하지만 팰로앨토의 영국 식당처럼 이런 영화는 안 만드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독점기업이 아닌 회사들은 자신의 시장을 여러 작은 시장의 교집합으로 정의함으로써 더 특별한 시장이라고 과장한다.

반면에 독점기업들은 자신의 시장이 여러 대형 시장의 합집합이라고 말함으로써 독점 사실을 숨기려고 한다.

실제로 독점기업은 어떤 식으로 이야기할까? 2011년 의회 청문회에서 구글 회장 에릭 슈미트(Eric Schmidt)가 진술한 내용을 한번 살펴보자.

“저희 앞에는 치열한 경쟁 구도가 펼쳐져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이제 이러 가지 방법으로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자비한 사람들

경쟁 사업이 가진 문제점은 단순한 이윤의 부족만이 아니다. 다시 한번 우리가 마운틴뷰에서 식당 하나를 운영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우리는 수십 곳의 경쟁자들과 무엇 하나 다를 게 없으므로 살아남으려면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이윤을 적게 남기고 저렴한 음식을 제공한다면 직원들에게는 최소한의 임금밖에 지불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줄일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줄어야 할 것이다. 작은 식당에 가보면 할머니가 카운터를 보고, 주방에서는 아이들이 설거지를 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최고의 식당들이라고 해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곳에서는 미셸린의 별점처럼 각종 감상평과 평가 점수 시스템들이 치열한 경쟁 문활를 조성해 셰프들을 미치게 만든다 (미셸린의 별점 3개를 받았던 프랑스 식당의 셰프 버나드 루소는 “별이 하나 줄어들면 자살해버릴 거야” 라고 말했다고 한다. 미셸린은 평가 점수를 바꾸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루소는 유명한 프랑스 식당 안내책자가 자신의 레스토랑 등급을 낮추었던 2003년 자살했다). 경쟁적 생태계는 사람들을 가차 없이 잔인하게 만들거나 심지어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그러나 구글과 같은 독점기업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독점기업은 경쟁을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자신의 직원들이나 제품에 더욱 정성을 쏟을 수 있다. 또 더 큰 세상에 미치는 자신들의 영향력에 관해서도 더욱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구글의 모토인 ‘사악해지지 말자’ 는 브랜드 전략의 일부이기도 하지만, 생존의 위협을 받지 않고도 윤리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성공한 기업들이 누리는 특권이기도 하다.

사업에서 ‘돈은 중요한 것이거나 아니면 모든 것이다.’ 독점기업들은 돈 외에 다른 것도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있지만, 독점이 아닌 기업들에게는 그런 여유가 없다. 완전경쟁 시장에 있는 기업은 현재의 이윤에 너무나 몰두한 너머지 장기적 미래에 관한 계획을 세울 여유가 없다. 기업이 매일매일 치열한 생존 경쟁을 초월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다. ‘독점 이윤’ 말이다.

Google Headquarters

Employees travel around campus via bicycles at Google headquarters Tuesday, July 16, 2013, in Mountain View, Calif. Google reports quarterly earns on Thursday, July 18, 2013. (AP Photo/Ben Marg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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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자본주의

따라서 모든 내부인들에게 독점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외부인들에게는 어떨까? 너무 큰 이윤은 나머지 사회의 희생을 대가로 하는 것일까? 사실 그렇다. 이윤은 고객의 지갑에서 나오는 것이고, 독점기업들은 그런 오명을 뒤집어쓸 만하다. ‘하지만 이것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세상에서나 해당되는 얘기다.’

창조적 독점 기업들은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풍요로움을 소개함으로써 고객들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제공한다. 창조적 독점기업들은 단순히 나머지 사회에도 좋은 기업이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강력한 원동력이다.

정부 역시 이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한쪽에서는 독점을 색출해내려고 기를 쓰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독점을 만들어내려고 애쓰는 것이다. 사실 누군가가 어느 모바일 소프트웨어의 디자인을 가장 먼저 생각해냈다고 해서, 그게 과연 법적 구속력이 있는 독점권을 부여받을 일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애플이 아이폰을 디자인, 제조, 마케팅해 얻는 독점 이윤은 인위적으로 물량을 줄였기 때문이 아니라 세상을 훨씬 더 풍요롭게 만든 것에 대한 보상이다. 마침내 고객들이 비싼 가격을 지불하고 제대로 작동하는 스마트폰을 구매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준 것에 대한 보상 말이다.

새로운 독점기업이 활발히 나타나는 것만 봐도 오래된 독점기업들이 혁신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준다. 애플의 iOS를 필두로 모바일 컴퓨팅이 부상하면서 수십 년간 이어져오던 마이크로소프트의 OS시장 지배력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더 이전으로 돌아가보면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하드웨어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IBM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소프트웨어 독점에 왕좌를 내줬다. AT&T는 전화 서비스 부문에서 20세기 내내 독점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누구나 저렴한 휴대전화를 구입해서 아무 서비스 제공자나 선택해 이용할 수 있다. 만약 독점기업이 진보를 저지하는 경향이 있었다면 위험한 존재가 되었을 것이고, 우리는 즉시 그들에게 반기를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보의 역사는 곧 더 나은 독점기업이 전임자의 자리를 대신해온 역사이기도 하다.

독점은 진보의 원동력이다. 수년간 혹은 수십 년간 독점 이윤을 누릴 수 있다는 희망은 혁신을 위한 강력한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독점기업은 혁신을 계속 지속할 수 있게 되는데, 왜냐하면 독점이윤 덕분에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고, 경쟁 기업들은 꿈도 꾸지 못할 야심찬 연구 프로젝트에도 돈을 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경제학자들은 왜 그토록 경쟁에 집착하며, 경쟁을 이상적인 상태라고 말하는 것일까? 이것은 전적으로 역사의 유물이다. 경제학자들은 19세기 물리학자들의 업적에서 수학을 베껴왔다. 경제학자들은 개인과 기업을 고유한 창조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교환 가능한 원자로 여긴다. 경제 이론들이 완전경쟁의 균형 상태를 자꾸 설명하는 이유는, 완전경쟁이 최선의 사업 형태라서가 아니라 모형화하기 쉬운 형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19세기 물리학이 예측한 장기적 균형이란, 우주의 열역학적 죽음이라고도 알려진, 모든 에너지가 균등하게 분배되고 모든 것이 멈춰 선 상태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는 우리가 열역학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와는 무관하게 아주 강력한 은유가 된다. 비즈니스에서 균형이란 정체를 뜻하고, 정체는 곧 죽음이다. 어느 산업이 경쟁적으로 균형 상태에 도달했다면, 그 산업에 속한 어느 기업이 사라진다고 해도 세상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다. 구분되지 않는 또 다른 경쟁자가 그 기업의 자리를 대신할 테니 말이다.

경제 이론을 벗어나 실제 세계에 나가보면, 모든 기업은 남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해내는 만큼, 딱 그만큼만 성공할 수 있다. 따라서 독점은 병적 현상이나 예외적 현상이 아니다. ‘독점은 모든 성공적 기업의 현 상태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다음과 같은 예리한 통찰로 시작한다. “행복한 가정들은 모두 비슷비슷하다. 불행한 가정들은 모두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 하지만 비즈니스는 이와는 정반대다. 행복한 기업들은 다들 서로 다르다. 다들 독특한 문제를 해결해 독점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실패한 기업들은 한결같다. 경쟁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경쟁 이데올로기

창조적 독점이란,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서 모든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동시에 그 제품을 만든 사람은 지속 가능한 이윤을 얻는 것이다. 경쟁이란, 아무도 이윤을 얻지 못하고 의미 있게 차별화 되는 부분도 없이 생존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경쟁이 건강하다고 믿는 걸까?

그것은 경쟁이 단순히 경제학적 개념이나 개인 또는 기업이 시장에서 겪어내야 하는 불편함이 아니라 하나의 강박관념, 즉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침투해 있는 이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사고를 왜곡하고 있다. 우리는 경쟁을 설파하고, 경쟁은 필요한 것이라고 뼛속 깊이 새기며, 경쟁이 요구하는 것들을 실천한다. 그리고 그 결과로 경쟁 속에 갇힌다. 경쟁을 더 많이 할수록 우리가 얻는 것은 오히려 줄어든다.

이렇게 간단명료한 진실을 우리는 모두 무시하도록 훈련받았다. 교육 시스템은 경쟁에 대한 우리의 집착을 반영하는 동시에 부추기고 있다. 성적이라는 것 자체가 각 학생의 경쟁력을 정확히 측정하는 도구다. 가장 높은 성적을 받은 학생은 지위와 자격을 부여받는다. 우리는 각 학생의 재능이나 의사와는 상관없이 모든 학생들에게 똑같은 과목을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가르친다. 그 결과 책상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맞지 않는 학생들은 열등하다는 기분을 느껴야 하는 반면, 시험이나 과제와 같은 전형적인 측정 방식에 뛰어난 학생들은 이토록 작위적으로 구성된 현실을 기준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게 된다. 희한하게도 학교의 이런 현실은 바깥세상의 현실과도 비슷하다.

학생들이 이 토너먼트에서 더 높이 올라갈수록 사정은 더욱 나빠진다. 엘리트 학생들은 자신 있게 계단을 올라가다가 결국은 자신의 원래 꿈을 포기해야 할 만큼 치열한 경쟁 단계에 이르게 된다. 고등학교 때 높은 목표를 세웠던 학생들은 대학과 대학원에 가면 경영 컨설팅이나 투자은행 같은 아주 뻔한 커리어를 놓고 똑같이 똑똑한 또래들과 치열한 라이벌 경쟁을 펼쳐야 한다. 기존 체제에 편입되는 대가로 학생들은(또는 그 가족들은) 인플레이션보다 더 빠른 속도로 치솟는 수십만 달러의 수업료를 내야 한다. 우리는 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걸까?

나는 ‘나 자신도 좀 더 일찍 스스로에게 이 질문을 해봤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내 진로가 얼마나 뻔해 보였던지, 중학교 졸업앨범에서 한 친구는 내가 4년 후에 스탠퍼드대학교 2학년생이 되어 있을 거라고 (아주 정확히) 예언했다. 나는 아주 뻔하게 모범적인 학부 생활을 마치고 스탠퍼드 로스쿨에 등록했고, 로스쿨에서는 스탠퍼드에서 주는 성공의 배지를 달기 위해 더욱더 치열하게 경쟁했다.

페일팔을 설립해서 팔고 난 후 2004년에 나는 옛 친구 한 명을 우연히 마주쳤다. 내가 대법관 보조관에 지원할 당시 그 준비 과정을 도와주었던 친구였다. 우리는 거의 10년 만에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 친구의 첫 마디는 “잘 지내?” 나 “세월이 이렇게나 많이 흘렀군” 따위가 아니었다. 친구는 활짝 웃으며 이렇게 물었다. “어때, 피터? 보좌관이 안 돼서 정말 기쁘지 않아?” 이제 이렇게 결과를 다 알고 나서 생각해보면, 우리 둘 다 내가 최종 경쟁에서 탈락한 게 오히러 잘된 일임을 안다.

만약 대법원에서 일하게 되었다면, 나는 아마 사건 조서를 쓰거나 남의 사업 계약서의 초안을 쓰며 평생을 보냈을 것이고, 새로운 것은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얼마나 달라졌을지는 말하기 어렵지만, 기회비용만큼은 어마어마했다. 로즈 장학생(로즈 장학금(Rhodes Scholarship)은 미국 등에서 최고의 엘리트 대학생들에게만 주어진다 —— 옮긴이) 들은 모두 어릴 때는 아주 훌륭한 미래를 갖고 있었다.

전쟁과 평화

교수들은 학계의 무자비한 문화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만, 경영자들은 언제나 비즈니스를 전쟁에 비유한다. MBA 학생들은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과 ≪손자≫(손자병법)를 들고 다닌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비즈니스 용어에도 전쟁에 관한 비유가 곳곳에 침투해 있다. 우리는 ‘헤드헌터(headhunter)’ (원래는 ‘죽인 사람의 머리를 모으는 사람’이라는 뜻)를 고용해서 ‘판매 인력(Sales force)’ (‘force’는 원래 ‘병력’을 뜻하는 말)을 보강해 ‘전속시장(captive market)’ (‘captive’ 는 말 그대로 포로가 되어 있는 제품 수요자들을 의미.) (무조건 특정 제품을 사갈 수밖에 없는 고정 고객층을 말한다 —— 옮긴이)을 장악하고, ‘대박(make a killing)’ 을 내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것은 비즈니스가 아니라 전쟁 같은 경쟁이다. 사람들은 경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용맹한 일인 양 취급하지만, 실제로 경쟁은 파괴적인 것이다.

사람들은 왜 서로 경쟁할까? 마르크스와 셰익스피어는 각각 사람들 간의 거의 모든 종류의 갈등을 이해할 수 있는 두 가지 모형을 제시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사람들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싸운다. 프롤레타리아가 부르주아와 투쟁하는 것은 (마르크스에 따르면 서로 다른 물질적 환경으로 인해) 생각과 목표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차이가 클수록 충돌도 커진다.

반면에 셰익스피어가 그리는 싸우는 사람들은 모두 비슷비슷하다. 그들은 싸울 이유가 전혀 없으며, 왜 싸우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한 예로 ≪로미오와 줄리엣≫은 ‘똑같이 지체 높은 두 집안이’ 라는 대사로 시작된다. 두 집안은 비슷한데도 서로를 증오하고, 심지어 반목이 심해질수록 더욱더 닮아간디. 결국 두 집안은 애당초 싸움이 왜 시작되었는지는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비즈니스의 세계에서 더 나은 지침을 제시하는 것은 셰익스피어다. 사람들은 회사 내부에서 승진을 위해 경쟁자에게 집착하고, 그러고 나면 회사는 시장에서 자신의 경쟁자들에게 집착한다. 온갖 극적인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정작 중요한 것은 잊어버리고, 그 대신 경쟁자에게 관심의 초점을 맞춘다.

셰익스피어의 모형을 현실 세계로 가져와 보자. ≪로미오와 줄리엣≫을 기초로 해서 ‘게이츠와 슈미트’라는 연극이 있다고 상상해보는 것이다. 몬터규는 마이크로소프트이고, 캐퓰릿은 구글이다. 최고의 컴퓨터광들이 운영하는 훌륭한 두 가문은 똑같기 때문에 분명 충돌하게 될 것이다.

모든 훌륭한 비극이 그렇듯이 충돌은 돌이켜봤을 때만 불가피해보일 뿐, 실제로는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일이다. 두 가문은 완전히 다른 곳에서 왔다. 몬터규 집안은 컴퓨터 운영체제와 사무용 응용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캐퓰릿 집안은 검색엔진을 만들었다. 그런데도 대체 싸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이유는 많았다. 신생기업이었을 때, 각 가문은 상대편을 내버려 두는 것으로 만족하며 각자 번영의 길을 찾았다. 하지만 점차 가문이 성장하면서 이들은 서로에게 관심의 초점을 돌리게 되었다. 몬터규 사람들은 몬터규 집안에 집착하는 캐퓰릿 사람들에게 집착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운영체제는 위도 vs 크롬 OS(Chrome OS), 검색엔진은 빙 vs 구글, 인터넷 브라우저는 익스플러러 vs 크롬, 사무용 응용 프로그램은 MS 오피스 vs  문서도구 Google Docs, 태블릿 PC는 서피스(Surface) vs 넥서스(Nexus)로 서로 경쟁하게 됐다.

가문의 전쟁이 몬터규 가와 캐퓰릿 가의 아이들을 희생시켰던 것처럼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은 재비력을 상실했고, 그 자리에 홀연히 애플이 나타나 두 가문을 모두 제치고 나아갔다. 2013년 1월, 애플의 시가총액은 5,000억 달러로서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를 합친 4,670억 달러를 넘어섰다. 3년 전만 해도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은 ‘각각’ 애플보다 시가총액이 높았다. 전쟁은 큰 비용을 치러야 하는 비즈니스다.

경쟁 구도는 해묵은 기회를 지나치게 강조하게 만들고, 과거에 효과가 있었던 것을 그대로 베끼게 만든다.

모방 경쟁의 위험성을 생각해보면, 아스퍼거증후군처럼 사회적 기술이 부족한 사람이 지금의 실리콘밸리에서는 오히려 유리해 보이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사회적 신호에 남들보다 덜 민감하다면, 그 사람은 남들과 똑같은 일을 할 가능성이 줄어들 것이다. 그런 사람이 물건을 만들거나 컴퓨터 그로그램을 짜는 데 관심이 있다면, 외골수처럼 그 일만 파고드는 것도 겁내지 않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그 일을 믿기 힘들 만큼 잘하게 될 것이다. 그런 다음 그 능력을 어딘가에 적용한다면, 그 사람은 소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도 남들보다 더 크다. 따라서 이 사람은 뻔한 것을 놓고 경쟁하는 무리들 속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경쟁 때문에 사람들은 기회가 없는 곳에서 기회라는 환상을 보기도 한다. 광란의 1990년대에 일어났던 온라인 애완동물용품 시장의 치열한 싸움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지는 것보다는 이기는 것이 낫겠지만, 싸울 만한 가치가 없는 전쟁이라면 모두가 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닷컴 붕괴 이후 펫츠닷컴이 사업을 접자, 3억 달러의 투자 자본도 함께 사라졌다.

경쟁자를 이길 수 없다면 합병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1998년 나는 맥스 레브친(Max Levchin)과 함께 콘피니티(confinity)를 창업했다. 1999년 말, 우리가 페이팔이라는 제품을 출시하자 일론 머스크(Elon Musk)의 엣스닷컴(X.com)이 턱밑까지 추격해왔다. 두 회사의 사무실은 팰로앨토의 유니버시티 가에 겨우 네 블록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었고, 엑스닷컴의 제품은 사양 하나하나가 우리 것과 똑같았다.

1999년 말이 되자, 우리는 총력전을 펼치고 있었다. 페이팔에 매달리고 있던 우리는 1주일에 100시간을 일하는 사람도 많았다. 비생산적인 형태였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만, 당시 우리의 관심사는 객관적 생산성이 아니라 엑스닷컴을 무찌르는 것이었다. 이런 목적으로 우리 엔지니어 중 한명은 실제로 폭탄을 설계하기도 했다. 그가 팀 미팅에서 폭탄 설계도를 꺼내놓자, 다행히 더 차분한 사람들이 나서서 그 제안을 잠이 극단적으로 부족한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2000년 2월이 되자, 일론과 나는 서로에 대한 걱정보다 급팽창하고 있는 닷컴 버블이 더 걱정되기 시작했다. 금융계에 타격이 생긴다면 우리는 이 싸우을 끝내기도 전에 둘 다 망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3월 초에 우리는 중립지대(두 사무실로부터 정확히 같은 거리에 위치한 카페였다)에서 만났고, 50대 50 합병을 성사시켰다. 합병 이후 경쟁 구도를 완화시켜나가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여러 문제점들을 해결하면서 우리는 더 좋은 회사가 될 수 있었다. 하나의 팀으로 합쳐진 우리는 닷컴 붕괴 사태를 이겨냈고, 회사를 성공적으로 키워낼 수 있었다.

가끔은 정말로 싸워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싸워서 이겨야 한다. 중간은 없다. 아예 공격에 나서지 말든지, 아니면 한 방에 끝내야 한다. 이런 조언을 따르기가 쉽지 않은 것은 자존심이나 명예 같은 것이 끼어들기 때문이다. 햄릿은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는 죽고야 말 불확실한 목숨을

운명과 죽음, 위험천만한 일에 내맡긴다.

계란 껍질만도 못한 일 때문에.

마땅히 위대하다는 것은,

위대한 논리도 없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지푸라기만 한 일에서도 싸울 명분을 찾아내는 것이다.

거기에 명예가 걸려 있다면.”

햄릿에게 위대함이란 달걀 껍질만큼 얄팍한 이유를 위해서도 기꺼이 싸우는 것이다. 중요한 일을 위해서라면 싸우지 ‘않을’ 사람이 없을 테지만, 진정한 영웅은 개인의 명예를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나머지 중요하지 않은 일을 위해서조차 기꺼이 싸우려고 한다. 이 뒤틀린 논리는 인간 본성의 일부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비즈니스에서 이런 논리는 곧 재앙이다. 경쟁을 가치의 표식으로 보지 않고 파괴적인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면, 이미 어지간한 사람들보다는 분별이 있는 것이다.

라스트 무버 어드밴티지

뉴욕타임스와 트위터의 가치를 한번 비교해보자. 두 회사 모두 몇천 명의 직원을 보유하고 있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뉴스를 접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하지만 2013년 상장 당시 트위터의 가치는 240억 달러었고, 이는 뉴욕타임스의 시가총액보다 ‘12배나 더 큰’ 금액이었다. 2012년에 트위터는 적자를 기록했고, 뉴욕타임스는 1억 3,300만 달러를 벌어들였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트위터에는 왜 이렇게 어마어마한 프리미엄이 붙는 것일까?

그 답은 현금 흐름에 있다. 이 말은 언뜻 다소 괴상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이익을 내고 있고 트위터는 그렇지 못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위대한 기업을 결정하는 것은 ‘미래에’ 현금 흐름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이다. 투자자들은 향후 10년간 트위터가 독점 이윤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는 반면, 신문사들의 독점 시대는 이미 지났다.

쇠퇴기업

간단히 말해서 오늘의 기업 가치는 그 회사가 미래에 벌어들일 모든 돈의 총합이다. (어느 기업을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미래 현금 흐름을 현재 가치로 할인해야 한다. 현재의 일정 금액은 미래의 같은 금액보다 더 큰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할인된 현금 흐름을 비교해보면, 저성장 기업과 고성장 스타트업사이의 차이를 극명하게 알 수 있다. 저성장 기업의 가치는 대부분 가까운 시일 내에 발생한다. (신문사처럼) 구경제에 속한 기업은 지금의 현금 흐름을 앞으로도 5,6년간 유지할 수 있다면 가치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체할 수 있는 다른 유사한 기업들이 있다면 이윤은 곧 경쟁을 통해 사라져버릴 것이다. 나이트클럽이나 식당이 그 극단적인 예다. 나이트클럽이나 식당 중에서도 성공적인 곳들은 현재 든든한 수익을 거두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현금 흐름은 아마도 향후 몇년 내에 줄어들기 시작할 것이다. 고객들이 더 새롭고 더 유행하는 곳으로 옮겨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술 기업은 정반대의 궤도를 그린다. 기술 기업들은 처음 몇년 간은 손실을 기록하는 경우도 많다.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내면 시간이 걸리고, 따라서 매출은 뒤늦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기술 기업의 가치는 대부분 적어도 10년에서 15년 후에 발생할 것이다.

2001년 3월, 페이팔은 아직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었지만 매출은 해마다 100퍼센트씩 증가하는 중이었다. 당시 내가 페이팔의 미래 현금 흐름을 예측해보니 기업 현재 가치의 75퍼센트가 2011년 이후에 발생할 이익에 기초하고 있었다.

사업을 시작한 지 겨우 27개월 된 회사에 대한 평가라고는 믿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이때의 예측조차 결과적으로는 과소평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도 페이팔은 연 15퍼센트의 성장을 지속하고 있으며, 현금 할인율은 10년 전보다 오히려 낮아졌다. 현재 페이팔의 가치는 대부분 2020년 이후에나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링크트인(LinkedIn) 역시 대표적으로 기업 가치가 먼 미래에 놓여 있는 회사다. 2014년 초 현재, 링크트인의 시가총액은 245억 달러로서, 2012년 기준 매출 10억 달러 미만, 순이익도 2,160만 달러밖에 안되는 회사치고는 매우 높은 평가다.

이 수치들을 보고 투자자들이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링크트인의 미래 현금 흐름 예상을 고려한다면 이런 평가는 충분히 타당성이 있다.

미래의 이익이 이토록 중요하다는 사실은 실리콘밸리에서조차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되는 사항은 아니다. 어느 기업이 가치가 있으려면 앞으로 성장을 해야 할 뿐만 아니라 ‘회사가 존속해야’ 한다. 그런데도 많은 기업가들은 오직 ‘단기 성장’ 에만 초점을 맞춘다. 물론 그들에게도 핑계는 있다. 성장은 측정하기가 쉽지만 ‘존속 가능성’ 은 측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수치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주별 사용자 수(Weekly Active Users) 와 월별 매출 목표, 분기별 실적 보고서에 목을 맨다. 하지만 이 수치들을 모두 달성한다고 해도 측정하기 어려운 더 근본적인 문제들을 간과한다면 사업의 존속이 위협받을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변덕스러운 관객들이 좋아할 콘텐츠를 계속해서 안정적으로 만들어낼 것인가?’ (해답은 아무도 모른다.)

가까운 시일 내에 성장하는 데 목숨을 건다면, 스스로 자문해봐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을 놓치게 된다. ‘앞으로 10년 후에도 이 회사가 존속할 것인가?’ 숫자만으로는 결코 그 답을 알 수 없다. 답을 알고 싶다면 내가 하는 사업의 질적 특성을 비판적으로 생각해봐야 한다.

독점기업의 특징

먼 미래까지 높은 현금 흐름이 예상되는 회사는 어떤 모습을 띠고 있을까? 모든 독점기업은 고유한 특성을 갖고 있지만, 보통은 다음과 같은 특징 중 몇가지를 가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특징이란 각각 독자 기술, 네트워크 효과, 규모의 경제, 그리고 브랜드 전략이다.

1. 독자 기술

유용한 경험칙 하나를 제시하자면, 독자 기술은 가장 가까운 대체기술보다 중요한 부분에서 ‘10배’는 더 뛰어나야 진정한 독점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그보다 못한 개선은 지속적인 개선으로 인색해 가치를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다. 특히나 이미 참가자들이 수두룩한 시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10 배의 개선을 이루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고안해내는 것이다. 아무것도 없던 곳에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내면, 그 가치의 증가폭은 이론상 무한대다.

그렇지 않으면 기존의 해법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방법도 있다.

다른 온라인 서점들에 비해 아마존은 10배 이상 많은 책을 선보였던 것이다.

10배의 개선을 이루는 방법 중에는 우월한 통합 디자인을 하는 방법도 있다. 2010년 이전에는 ………… 그러던 차에 애플이 아이패드를 출시했다. 통합 디자인을 얼마나 개선했는지는 측정하기 어렵지만, 어찌 되었든 아이패드가 이전의 제품들보다 적어도 10배 이상의 개선을 이룬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태블릿 PC는 쓸 수 없던 것에서 쓸모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2. 네트워크 효과

네트워크 효과는 강력한 것이지만, 그 효과를 누리려면 초창기의 사용자들에게 해당 제품이 가치가 있어야 한다. 어떤 네트워크든 처음에는 규모가 작을 수박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설적이지만 네트워크 효과가 필요한 사업들은 특히나 더 작은 시장에서 시작해야 한다. 페이스북은 처음에는 겨우 하버드 대학생들 사이에서만 사용되었다. 마크 저커버그의 첫 작품은 수업을 함께 듣는 친구들이 모두 가입할 수 있게 구상되었을 뿐, 지구상 모든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게 디자인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 점은 MBA 출신들이 왜 좀처럼 성곡적인 네트워크 사업을 시작하지 못하는지도 설명해준다. 초기 시장이 너무 작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사업 기회로조차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 이상 찾아낼 숨겨진 비밀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P126)

사람들이 숨겨진 비밀을 무서워하는 것은 틀릴까 봐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숨겨진 비밀이라면 당연히 주류 세력의 점검을 받은 적이 없다. 인생에서 실수하지 않는 것이 목표인 사람은 숨겨진 비밀을 찾아다니면 안 된다. 혼자서만 옳은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혼자이면서 ‘틀리는 것’ 은 견딜 수 없을 테니 말이다. (P130)

세번째 추세는 ‘무사 안일주의’ 다. 사회의 엘리트들은 새로운 사고를 탐구할 수 있는 자유와 능력을 가장 많이 지녔다. 하지만 그들이야말로 숨겨진 비밀을 가장 믿지 않는 사람들인 것 같다. 이미 다 해놓은 것들을 토대로 편안하게 지대(地代)나 받고 있으면 되는데, 무엇하러 새로운 숨겨진 비밀을 찾아 해매겠는가? (P130)

숨겨진 비밀을 찾겠다는 포부를 가진 사람들은 먼저 이렇게 자문하게 될 것이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게 가능하다면 똑똑하고 창의적인 글로벌 인재들 중 누군가가 벌써 발견하지 않았을까?’  (P131)

숨겨진 비밀은 찾아다니지 않으면 발견할 수가 없다. 이 점을 잘 보여준 사람이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앤드루 와일스였다. (P135)

진짜 진실은 아직 찾아내지 못한 숨겨진 비밀들이 많이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 비밀들은 오직 그칠 줄 모르고 찾아 헤매는 사람들에게만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P136)

숨겨진 비밀을 믿고 그것을 찾아다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보편화된 관습을 넘어 뻔히 보이는 곳에 숨어 있는 기회들을 볼 수 있다. (P137)

숨겨진 비밀을 발견한 사람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누군가에게 얘기를 할 것인가? 아니면 혼자서 간직할 것인가? 이는 숨겨진 비밀의 종류에 달려 있다. 파우스트가 바그너에게 들려준 것처럼 위험한 진실들도 있으니까 말이다. (P141)

당신만이 알고 있는 숨겨진 비밀을 공유했다면, 상대방은 이제 공모자가 된 것이다. 톨킨이 《반지의 제왕》 에 썼던 것처럼 말이다.

길은 계속해서 이어지네.

길이 시작된 문에서부터.

인생은 긴 여정이다. 먼저 지나간 이들의 발자국이 찍힌 그 길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야기의 뒤로 가면 또 이런 어구가 나온다.

모퉁이를 돌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새로운 길이거나 비밀의 문.

오늘 그 길을 지나쳤지만

내일은 이 길로 올지도 모르지.

그리고 숨겨진 길을 따라

달까지, 해까지 갈지도 모르지.

길이 끝없이 이어질 필요는 없다. 숨겨진 길을 따라가라. (P141)

 


(to be continued….) (perha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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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thoughts on “제로 투 원 (ZERO to ONE) 독서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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