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Sapiens)》독서필기

<사피엔스(Sapiens)> 독서필기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

약 135억 년 전 빅뱅이라는 사건이 일어나 물질과 에너지,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게 되었다. 우주의 이런 근본적 특징을 다루는 이야기를 우리는 물리학이라고 부른다. 물질과 에너지는 등장한 지 30만년 후에 원자라 불리는 복잡한 구조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원자는 모여서 분자가 되었다. 원자, 분자 및 그 상호작용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는 화학이라고 부른다.

약 38억 년 전 지구라는 행성에 모종의 분자들이 결합해 특별히 크고 복잡한 구조를 만들었다. 생물이 탄생한 것이다. 생물에 대한 이야기는 생물학이라 부른다. 약 7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 종에 속하는 생명체가 좀 더 정교한 구조를 만들기 시작했다. 문화가 출현한 것이다. 그후 인류문화가 발전해온 과정을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역사의 진로를 형성한 것은 세 개의 혁명이었다. 약 7만년 전 일어난 인지혁명은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약 12,000년 전 발생한 농업혁명은 역사의 진전 속도를 빠르게 했다. 과학혁명이 시작한 것은 불과 5백년 전이다. 이 혁명은 역사의 종말을 불러올지도 모르고 뭔가 완전히 다른 것을 새로이 시작하게 할지도 모른다. 이들 세 혁명은 인간과 그 이웃 생명체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그것이 이 책의 주제다.

-p18

같은 과에 속하는 모든 동물은 동일한 선조의 후손이다. 예컨대 모든 고양이과 동물은 약 2,500만년 전에 살았던 조상을 공유하고 있다. 가장 작은 집고양이에서 무서운 사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마찬가지다.

호모 사피엔스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과에 속한다. 이 엄연한 사실은 역사에서 가장 은밀히 숨겨진 비밀이었다…좋든 싫든, 우리는 거대 영장류라는 크고 유달리 시끄러운 과의 한 일원이다. 현생종들 중 우리와 가까운 친척으로는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이 있고, 가장 가까운 것은 침팬지다. 불과 6백만년 전 단 한마리의 암컷 유인원(꼬리 없는 원숭이)이 딸 둘을 낳았다. 이 중 한마리는 모든 침팬지의 조상이, 다른 한 마리는 우리 종의 할머니가 되었다.

-p21

인류가 스스로 숨겨온 비밀

아시아의 좀 더 동쪽 지역에는 호모 에렉투스가 살았다. 이들 ‘똑바로 선 사람’은 그 지역에서 2백만년 가까이 살아남아, 가장 오래 지속된 인간 종이 되었다. 우리 사피엔스가 이 기록을 깰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금부터 1천년 후에 존재할지 여부도 의심스러운 마당에 2백만년은 우리와는 동떨어진 시간이다.

-p23

푸조라는 신화

미국에서 유한회사를 일컫는 기술적 용어는 ‘corporation(법인, 기업)’인데, 이는 아이러니다. 그 어원인 라틴어 ‘corpus’는 ‘몸’이라는 뜻인데 법인한테 딱 하나 없는 것이 바로 몸이기 때문이다. 실제 몸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미국법은 이들 기업을 마치 뼈와 살을 가진 인간처럼 법인으로 취급한다.

-p57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

시베리아 툰드라나 호주 중부, 아마존 열대우림을 찾는 도보 여행자들은 자신이 인간의 손이 전혀 닿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풍경에 들어섰다고 생각하겠지만, 이것은 환상이다. 그곳에는 우리에 앞서서 수렵채집인들이 살았으며, 이들은 가장 빽빽한 밀림부터 가장 척박한 황무지에 이르기까지 극적인 변화를 초래했다. 다음 장에서 우리는 최초의 농촌마을이 생기기 훨씬 전에 수렵채집인이 우리 행성의 생태계를 얼마나 철저히 바꿔놓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이야기를 지어내 말할 줄 아는 사피엔스의 방랑하는 무리들은 동물계가 이제껏 만들어낸 것 중 가장 중요하고 가장 파괴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다.

-p101

역사상 최대의 사기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그것은 누구의 책임이었을까? 왕이나 사제, 상인은 아니었다. 범인은 한 줌의 식물 종, 밀과 쌀과 감자였다. 이들 식물이 호모 사피엔스를 길들였지, 호모 사피엔스가 이들을 길들인 게 아니었다.

-p124

새로운 농업노동은 너무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사람들은 밀밭 옆에 영구히 정착해야만 했다. 이로써 이들의 삶은 영구히 바뀌었다. 우리가 밀을 길들인 것이 아니다. 밀이 우리를 길들였다. ‘길들이다, 가축화하다’라는 뜻의 단어 ‘domesticate’는 ‘집’이라는 뜻의 라틴어 ‘domus’가 어원이다. 집에서 사는 존재는 누구인가? 밀이 아니다. 호모 사피엔스다.

-p126

농업혁명의 핵심이 이것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있게 만드는 능력. 하지만 이런 진화적 계산법에 왜 개인이 신경을 써야 하는가?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호모 사피엔스 DNA 복사본의 개수를 늘리기 위해 삶의 질을 포기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 거래에 동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농업혁명은 덫이었다.

-p129

상상 속의 질서

…사람들이 어떻게 토지와 물을 나눌지, 불화와 분쟁을 조정할지, 가뭄이나 전쟁에서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해 합의가 이뤄지리라는 보장은 없다.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분쟁이 번지게 마련이다. 창고가 가득 차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역사상의 전쟁과 혁명 대부분은 식량부족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프랑스 혁명의 선봉에 선 것은 굶주린 농부가 아니라 부유한 법률가들이었다.

-p154

고대의 정령과 부족 토템에 대한 이야기들은 5백 명의 사람들이 서로 조가비를 교역하고 이상한 축제를 거행하고 네안데르탈인 무리를 쓸어내기 위해 힘을 합치게 만들 만큼 강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다. 고대의 사회학자는 신화에는 수백만 명의 서로 모르는 사람들을 매일 협력하게 만들 수 있는 힘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것은 틀린 생각이었다. 신화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농업혁명 덕분에 밀집된 도시와 강력한 제국이 형성될 가능성이 열리자, 사람들은 위대한 신들, 조상의 땅, 주식회사 등등의 이야기를 지어냈다. 꼭 필요한 사회적 결속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인간의 본능이 늘 그렇듯 달팽이처럼 서서히 진화하고 있는 동안, 인간의 상상력은 지구상에서 유례없이 거대한 협력의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갔다.

-p155

신화는 어떻게 해서 제국 전체를 지탱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이미 그런 사례를 하나 검토했다. 푸조 사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신화 두개를 살펴보자. 하나는 기원전 1776년경의 함무라비 법전이다. 이는 고대 바빌로니아인 수십만 명의 협력 매뉴얼 역할을 했다. 또 하나는 1776년의 미국 독립선운문이다. 이는 오늘날까지도 현대 미국인 수억 명의 협력 매뉴얼로 기능하고 있다.

-p157

교도소의 담장

…이를테면 코카콜라 사는 전 세계에서 다이어트 코크를 광고하면서 “다이어트 코크, 기분 좋은 일을 하라”는 문구를 내세웠다.

사람들이 가장 개인적 욕망이라고 여기는 것들조차 상상의 질서에 의해 프로그램된 것이다. 예컨데 해외에서 휴가를 보내고 싶다는 흔한 욕망을 보자. 이런 욕망은 전혀 자연스럽지도, 당연하지도 않다. 침팬지 알파 수컷은 권력을 이용해 이웃 침팬지 무리의 영토로 휴가를 갈 생각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고대 이집트의 엘리트들은 피라미드를 짓고 자신의 시신을 미라로 만드는 데 재산을 썼지만, 누구도 바빌론에 쇼핑하러 간다거나 페니키아에서 스키 휴가를 보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늘날 사람들이 휴가에 많은 돈을 쓰는 이유는 그들이 낭만주의적 소비지상주의를 진정으로 신봉하기 때문이다.

-p173

메모리 과부하

타는 듯한 햇볕이 내리쬐는 그곳의 진흙 평야는 소출이 풍부했고 도회지를 번영시켰다. 주민 수가 늘어나면서 이들 사이의 업무를 조율하는 데 필요한 정보의 양도 늘었다. 기원전 3500~3000년 어느 시기에, 익명의 수메르 천재들이 뇌 바깥에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시스템을 발명했다. 대량의 수학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한 맞춤 시스템이었다. 덕분에 수메르인들은 인간의 뇌에서 비롯되는 사회질서의 제약에서 벗어나 도시, 왕국, 제국의 출현에 이르는 길을 열었다. 수메르인이 발명한 데이터 처리 시스템은 ‘쓰기’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p182

쿠심이 서명했다

초기 단계의 쓰기는 사실과 숫자에 한정되었다. 만일 위대한 수메르 소설이 존재했더라도, 점토판에 쓰이지는 않았다. 쓰기는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고, 기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장부 기록 이외의 일에 활용할 이유가 없었다. 만일 우리가 5천년 전의 선조들이 남긴 지혜의 말을 찾으려 한다면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상들이 남긴 가장 초기의 메시지는 가령 이랬기 때문이다. ‘보리 29,086자루 37개월, 쿠심.’ 이 문장의 의미는 아마도 ‘37개월에 걸쳐 보리 29,086자루를 받았다. 서명자 쿠심’일 것이다. 아, 슬프다, 역사상 최초의 문서에 담긴 것이 철학적 통찰도, 시도, 전설도, 심지어 왕의 승리도 아니었다니. 세금 지불액과 쌓이는 빚의 액수와 재산의 소유권을 기록한 평이한 경제문서였다니.

-p183

 

관료주의의 불가사의

히브리 성경, 그리스의 일리아스, 힌두교의 마하바라타, 불교의 팔리어 경전은 모두 구전 작품으로 시작했다. 이들 작품은 입에서 입으로 수많은 세대를 거치며 전수되었으며, 설사 문자가 발명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살아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세금 장부와 복잡한 관료제도는 불완전한 문자체계와 함께 태어났고, 이 둘은 오늘까지도 샴쌍둥이처럼 확고하게 연결되어있다. 컴퓨터화된 데이터베이스와 스프레드시트에 기입된 암호 같은 항목들을 생각해보라.

-p188

역사에 정의는 없다

미국의 질서는 부의 위계질서를 옹호했다. 일부는 이 위계질서를 신이 부여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일부는 불변의 자연법이 구현된 것이라고 보았다. 자연은 인간의 장점을 부로써 보상하고 나태함을 처벌한다는 것이었다.

-p197

돈의 향기

심지어 오늘날에도 주화와 지폐(은행권)는 화폐의 유형으로서는 드문 것이다. 세계 전체의 화폐 총량은 약 60조 달러지만 주화와 지폐의 총액은 6조 달러 미만이다. 돈의 90퍼센트 이상, 우리 계좌에 나타나는 50조 달러 이상의 액수는 컴퓨터 서버에만 존재한다. 그에 따라 대부분의 상거래는 하나의 컴퓨터 파일에 들어 있는 전자데이터를 다른 파일로 옮기는 방식으로 이뤄지지, 실제로 돈을 주고받지는 않는다. 가령 집을 살 때 가방에 가득 찬 지폐로 지불하는 것은 범죄자밖에 없다. 사람들이 전자 데이터를 받는 대가로 재화와 용역을 기꺼이 거래하려 하는 한, 그것은 반짝이는 주화나 빳빳한 지폐보다 낫다. 더 가볍고 부피가 더 작고 기록하기도 더 쉽다.

-p255

돈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별보배고둥 껍데기와 달러화의 가치는 우리의 공통된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 가치는 조개껍데기나 종이의 화학적 구조, 색상, 형태 속에 있지 않다. 다시 말해 돈은 물질적 실체가 아니라 심리적 구조물이다. 그것은 물질을 마음으로 전환함으로써 작동한다. 하지만 왜 그것이 성공했을까? 비옥한 논을 쓸모없는 별보배고둥 껍데기 한 줌과 기꺼이 바꿀 사람이 대체 어디 있을까? 혹은 왜 우리는 겨우 색칠한 종이 몇장을 받자고 기꺼이 햄버거를 뒤집고, 보험을 팔고, 못된 아이 세명을 봐주는가?

사람들이 기꺼이 그런 일을 하려 드는 것은 자신들의 집단적 상상의 산물을 믿기 때문이다. 신뢰는 온갖 유형의 돈을 주조하는 데 쓰이는 원자재다…화폐란 상호신뢰 시스템의 일종이지만, 그저 그런 상호신뢰 시스템이 아니라 인간이 고안한 것 중에서 가장 보편적이고 효율적인 상호신뢰 시스템이다.

이런 신뢰를 창조한 것은 정치, 사회, 경제적 관계의 매우 복잡하고 장기적인 네트워크다. 나는 왜 별보배고둥 껍데기나 금화나 달러화를 신뢰할까? 내 이웃들이 그것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이웃들이 그것을 신뢰하는 이유는 내가 그것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p258

화폐의 역사에서 진정한 돌파구가 생긴 것은 그 자체로는 내재적 가치가 없는 돈, 그렇지만 저장과 운반이 쉬운 돈을 사람들이 신뢰하게 되었을 때다. 그런 화폐는 기원전 3000년에서 기원전 2000년의 중간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출현했다. 은으로 된 세겔이었다.

-p260

금이라는 복음

철학자와 사상가와 예언자는 수천년에 걸쳐 돈을 흉보면서 돈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매도했다.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한편 돈은 인류가 지닌 관용성의 정점이다. 돈은 언어나 국법, 문화코드, 종교 신앙, 사회적 관습보다 더욱 마음이 열려있다. 인간이 창조한 신뢰 시스템 중 유일하게 거의 모든 문화적 간극을 메울 수 있다. 종교나 사회적 성별, 인종, 연령, 성적 지향을 근거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유일한 신뢰 시스템이기도 하다. 돈 덕분에 서로 알지도 못하고 심지어 신뢰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

-p266

돈의 대가

돈에는 이보다 더욱 어두운 면도 존재한다. 돈이 서로 모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보편적인 신뢰를 쌓게 해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신뢰는 인간이나 공동체, 혹은 신성한 가치가 아니라 돈 그 자체 그리고 돈을 뒷받침하는 비인간적 시스템에 투자된다. 우리는 이방인이나 이웃집 사람을 신뢰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지닌 주화를 신뢰할 뿐이다. 그들에게서 주화가 떨어지면 우리의 신뢰도 사라진다. 돈이 공동체, 신앙, 국가라는 댐을 무너뜨리면, 세상은 하나의 크고 비정한 시장이 될 위험이 있다.

제국의 비전

온 세상을 그들을 위해 지배한다는 생각은 놀라울 정도로 주제넘는 것이었다. 진화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사회적 포유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이민족 공포증을 지닌 존재가 되었다.

사피엔스는 인간을 본능적으로 ‘우리’와 ‘그들’의 두 부류로 나눈다. 우리란 너와 나, 언어와 종교와 관습이 같은 사람들을 말한다.

-p280

중국의 정치사상에서나 역사기록에서나 황제의 시기는 질서와 정의를 갖춘 황금시대로 평가된다. 현대의 서구적 시각에서 공정한 세계는 서로 독립된 국민국가들로 구성되어야 하지만, 중국에서 정치적 분열의 시대는 혼란과 불공정으로 얼룩진 암흑시대로 비쳤다. 이런 인식은 중국 역사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하나의 제국이 붕괴하면, 지배적인 정치이론은 언제나 권력자들에게 하찮은 독립군주에 안주하지 말고 중국의 재통일을 시도해야 한다고 들들 볶았다. 그리고 그런 시도는 이르든 늦든 늘 성공했다.

-p282

기원전 3세기의 마우리아 제국은 몽매한 세계에 부처의 가르침을 퍼뜨리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다. 무슬림 칼리프들은 예언자 마호메트의 계시를 퍼뜨리라는 신의 명령을 받았다. 가능하면 평화롭게, 필요하면 무력을 써서라도. 스페인과 포르투갈 제국은 자신들이 인도 제도와 아메리카 대륙에서 부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주민들을 진정한 신앙으로 개종시키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유주의와 자유무역이라는 쌍둥이 복음을 퍼뜨리겠다는 영국의 사명에는 해가 지는 일이 없었다. 소련은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프롤테리아의 유토피아적 독재로 향하는 불굴의 역사적 행진을 촉진해야 한다는 의무에 스스로 매여 있었다. 오늘날 많은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정부에게는 제3세계에 민주주의와 인권의 혜택을 가져다줄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좋은 것들을 순항 미사일과 F16 전투기로 배달해야 하더라도.

-p284

대체로 제국은 자신들이 복속시킨 민족에게서 많은 것을 흡수하여 혼성 문명이 되었다. 로마 제국의 문화는 로마적인 만큼이나 그리스적이었다. 제국주의 아바스 왕조의 문화에는 페르시아, 그리스, 아랍 문화가 모두 섞여 있었다. 제국주의 몽골 문화는 중국의 모방이었다. 제국주의 미국에서 케냐 혈통의 대통령은 좋아하는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를 보면서 이탈리아 피자를 먹을 수 있다. 터키에 대항하는 아랍인의 반란에 관한 영국인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를 보면서 말이다.

-p285

정복과 수용 사이에 끼인 세대는 소외되고 배제되었다. 이들은 스스로 사랑했던 지역문화를 이미 잃었지만, 제국주의 세계에 동등하게 참여할 자격은 받지 못했다. 그들이 수용한 문화는 그들을 여전히 야만인으로 보았다.

-p286

종교의 법칙

일신론자들은 다신론자들에 비해 훨씬 더 광신적이었고, 전도에 헌신하는 경향이 있다. 어떤 종교가 다른 신앙의 정당성을 인정한다면 그것은 그 신이 우주의 최고 권력이 아니든지, 그들이 신으로부터 우주의 진리를 부분적으로만 전수받았든지 둘 중 하나였다. 일신론자들은 자신들이 단 한 분밖에 없는 신의 모든 메시지를 갖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다른 모든 종교를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지난 2천년간 일신론자들은 모든 경쟁상대를 폭력으로 말살시킴으로써 자신들의 힘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되풀이했다.

그것은 효과가 있었다. 기원후 1세기 초반, 세상에는 일신론자가 전혀 없다시피 했다. 기원후 500년경이 되자 세계 최대의 제국 중 하나인 로마 제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었으며, 선교사들은 유럽의 다른 지역과 아시아, 아프리카에 기독교를 전파하느라 바빴다.

16세기 초에 이르자 일신교는 아프로아시아에서 동아시아와 아프리카 남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을 지배했으며, 남아프리카, 아메리카, 오세아니아를 향해 긴 촉수를 뻗기 시작했다.

-p310

사실 일신론은 역사에서 나타났듯이 일신론과 이신론, 다신론, 애니미즘 유산이 하나의 신성한 우산밑에 뒤섞여 있는 만화경이다. 보통 기독교인은 일신론의 하느님만이 아니라 이신론적 악마, 다신론적 성자, 애니미즘적 유령을 모두 믿는다. 종교학자들은 이처럼 서로 다르고 심지어 상충하는 사상을 동시에 인정하는 행위와 각기 다른 원천에서 가져온 의례와 관례를 혼합하는 행위에 대한 명칭으로, ‘제설혼합주의’를 썼다. 실제로 제설혼합주의야말로 단 하나의 세계 종교일지 모른다.

-p317

법(Dharma, 다르마)으로 알려진 이 법칙은 불교도에게 보편적 자연법칙으로 이해되고 있다. ‘고통은 집착에서 생긴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진리다…일신론적 종교의 제일 원리는 ‘신은 존재한다. 그분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시는가?’인 반면 불교의 제일 원리는 “번뇌는 존재한다. 나는 거기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이다.

-p322

시간이 흐르면서 여러 불교 분파들이 부처들과 보살들로 구성된 만신전을 발전시켰다. 이들은 해탈할 능력을 지닌 인간(보살)과 비인간적 존재(부처)이지만 연민 때문에 해방을 포기했다고 했다. 아직도 불행의 덫에 빠져 있는 무수한 존재들을 돕기 위해서 말이다. 신을 숭배하는 대신에 많은 불교도들은 이런 깨달은 자들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열반에 이르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할 뿐 아니라 세속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빌었다. 그래서 우리는 동아시아 곳곳에서 수많은 부처와 보살이 비를 부르고, 전염병을 막고, 심지어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이기는 데 시간을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기도와 색색의 꽃과 향과 쌀과 사탕을 받는 대가로 말이다.

인간숭배

지난 3백 년은 흔히 인류의 역사에서 종교가 점차 중요성을 잃어가며 세속화가 진행된 시기로 묘사된다. 유신론적 종교에 대해서라면 대체로 옳은 말이다. 하지만 자연법칙 종교를 고려한다면 사정이 전혀 다르다. 근대는 강력한 종교적 열정의 시대, 전대미문의 포교 노력과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의 시대였다. 수많은 자연법칙 종교가 근대에 새로이 등장했다. 자유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민족주의, 국가사회주의가 그런 예다. 이들은 종교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이데올로기라고 칭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용어상의 문제일 뿐이다. 만일 종교를 초자연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초로 한 인간의 규범과 가치 시스템이라고 정의한다면, 공산주의는 이슬람교에 비교해도 조금도 손색이 없는 종교다.

공산주의는 신을 믿지 않았다. 불교 역시 신을 가차 없이 다루지만, 그럼에도 보통 종교로 분류된다. 불교도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자들은 인간의 행동을 인도해야 할 초자연적 질서와 불변의 법칙을 믿었다. 불교도들은 자연법칙이 고타마 싯다르타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믿는 데 비해, 공산주의자들은 자연법칙이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에 의해 발견되었다고 믿었다.

유사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에는 경전과 예언서가 있다. 프롤레타리아의 궁극적 승리와 함께 역사는 곧 종말을 맞을 것이라고 예언한 마르크스의 <자본론> 같은 책이다. 공산주의는 나름의 기념일과 축제가 있었는데, 5월 1일 노동절과 10월 혁명 기념일이 그런 예다.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에 능통한 신학자들이 있었으며, 소련 적군의 모든 부대에는 인민위원이라 불리는 지도 신부가 있어서 병사들과 장교들의 신심을 모니터링했다. 순교자와 성전이 있었고, 트로츠키주의와 같은 이단이 있었다. 소련 공산주의는 광적이고 포교에 열심인 종교였다. 독실한 공산주의자는 기독교도나 불교도가 될 수 없었으며, 생명을 바쳐서라도 마르크스와 레닌의 복음을 전파하였다.

-p323

근대의 모든 신념들의 역사를 조사하기는 불가능하다. 이들 사이에 분명한 경계가 없기 때문에 특히 그렇다. 이들은 일신교나 대중불교 못지않게 혼합적이다. 불교도가 힌두교의 신들을 숭배할 수 있는 것처럼, 그리고 일신교도들이 악마의 존재를 믿을 수 있는 것처럼, 오늘날 전형적인 미국인은 동시에 국수주의자(역사에서 특별한 사명을 지닌 미국이란 국가가 존재한다고 믿는다)면서, 자유시장 자본주의자(자유 경쟁과 사익 추구가 번영하는 사회를 만드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는다)면서, 주유주의적 인본주의자(인간이 그 창조주로부터 양도 불가능한 권리들을 부여받았다고 믿는다)일 수 있다.

-p325

만일 우리가 윤리적, 정치적 딜레마와 마주친다면, 우리는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고 내면에서 울리는 목소리 — 인간성의 목소리 — 를 들어야 한다.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의 주된 계명들은 이런 내면의 목소리가 지닌 자유를 침입이나 손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계명들을 통칭하여 ‘인권’이라고 부른다.

-p327

가령 자유주의자들이 고문과 사형에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근대 초기 유럽에서 살인자는 세상의 질서를 침해하고 불안정하게 만드는 존재로 여겨졌다. 세상의 균형을 되찾기 위해서는 범인을 고문하고 공개 처형할 필요가 있었다. 모든 사람이 질서가 회복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셰익스피어와 몰리에르의 시대 런던이나 파리 주민들에게 끔찍한 처형을 참관하는 것은 인기 있는 오락이었다. 한편 오늘날 유럽에서 살인은 인간성이라는 신성한 본성에 대한 침해로 여겨진다. 요즘 유럽인들은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고문하고 처형하지 않는다. 그 대신 범죄자들을 최대한 ‘인도적’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처벌함으로써, 인간으로서 그의 존엄을 지키고 심지어 회복시킨다. 살인범의 인간성을 중중함으로써 모든 사람은 인간의 존엄성을 다시 되새기고, 질서는 회복된다. 우리는 살인범을 보호함으로써 그의 잘못을 바로잡는다.

또 다른 중요한 분파는 사회주의적 인본주의다… 사회주의자에 따르면 불평등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최악의 모독이다. 인간의 보편적 본질이 아니라 주변적 속성에 특권을 부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령 부가 가난한 자에 비해 특권을 누린다는 것은 우리가 부자에게나 가난한 자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모든 인간의 보편적 본질보다 돈을 더 중시한다는 의미가 된다. 사회주의적 인본주의는 자유주의적 인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일신론의 토대 위에 건설되었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사상은 모든 영혼이 하느님 앞에 평등하다는 일신론적 확신의 개정판이다.

-p328

생물학자들은 나치 인종이론의 정체를 폭로해왔다. 특히 1945년 이후 시행된 유전학 연구에서, 다양한인간 혈통 사이의 차이는 나치가 제시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적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지만 이런 결론은 상대적으로 새로운 것이다. 1933년의 과학 지식 수준을 고려하면, 나치의 믿음이 한계를 넘었다고 보기 힘들었다. 각기 다른 인종이 존재한다는 것, 백인이 우월하다는 것, 이 우월한 인종을 보호 육성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서구 엘리트 대부분이 갖고있던 믿음이었다.

-p330

나치 이데올로기는 너무나 인종차별적이었기 때문에, 인종차별주의는 이후 서구에서 신뢰받지 못했다. 하지만 변화가 일어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백인 우월주의는 적어도 1960년대까지 미국 정치의 주류 이데올로기로 남아 있었다. 유색인종의 호주 이민을 제한하는 백호주의는 1973년까지 유지되었다. 호주 원주민은 1960년대까지 동등한 정치권을 인정받지 못했으며 대부분은 선거에서 투표권조차 없었다. 시민 구실을 하기에 부적합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p331

성공의 비결

2단계 카오스는 스스로에 대한 예측에 반응하는 카오스다. 그러므로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다. 시장이 그런 예다.

정치도 2단계 카오스다. 소련 연구가들은 1989년 혁명을 예측하지 못했고, 중동 전문가들은 2011년 ‘아랍의 봄’ 혁명을 예측하지 못했다. 이를 두고 비난하고 혹평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런 비난은 공정하지 못하다. 혁명은 그 정의상 예측이 불가능하다. 예상 가능한 혁명은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p341

역사상가장 성공한 문화가반드시 호모 사피엔스에게 가장 좋은 물화라는 생각은 근거가 없다. 진화와 마찬가지로 역사는 개별 유기체의 행복에 무관심하다. 그리고 개별 인간은 너무나 무지하고 약해서, 대개는 역사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되도록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역사는 교차로에서 교차로로, 뭔가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처음에는 이 경로를 택했다가 다음에는 저 경로로 진입했다가 하면서 나아간다. 1500년경 역사는 가장 중대한 선택을 했다. 인류의 운명 뿐 아니라 아마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의 운명까지도 바꿀 선택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과학혁명이라고 부른다.

왜 과학혁명은 하고많은 곳을 놔두고 하필 그곳에서 일어났을까? 어째서 중국이나 인도에서 일어나지 않았을까? 어째서 실제보다 2세기 앞이나 3세기 뒤가 아니라 두번째 천년의 한중간에 일어났을까? 우리는 모른다. 학자들은 열몇 가지 이론을 내놓았지만 특별히 그럴싸한 이론은 없다.

-p346

비어 있는 지도

무지를 인정하지 않은 콜럼버스는 여전히 중세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세계 전체를 안다고 확신했으며, 심지어 스스로 이룬 기념비적인 발견도 그 확신을 흔들지 못했다.

최초의 근대인은 아메리고 베스푸치였다. 그는 1499년~1504년 사이에 여러 차례 아메리카 탐험대에 참가했던 이탈리아 선원이었다…대륙을 그려 넣은 발트제뮐러는 이름을 부여해야 했다. 그는 그것을 발견한 사람이 아메리고 베스푸치라고 잘못 알고 있던 터라, 이 대륙에 아메리고를 기리는 이름을 붙였다. 아메리카라고. 발트제뮐러의 지도는 인기를 끌었고, 수많은 다른 지도 제작자들에 의해 복제되었다. 그가 새 땅에 부여한 이름도 함께 퍼져나갔다. 세계 4분의 1에, 즉 일곱 대륙 중 두 곳에 거의 무명이던 이탈리아인의 이름이 붙은 것이다. 그가 유명할 이유라고는 “우리는 모른다”라고 말할 용기가 있었던 점 외에 아무것도 없다. 이 사실에는 어떤 시적 정의가 있다.

-p407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과학혁명의 기초가 되는 사건이었다. 그것은 유럽인에게 과거의 전통보다 지금의 관찰 결과를 더 선호하라고 가르쳐주었다. 그뿐 아니라 아메리카를 정복하겠다는 욕망은 유럽인들로 하여금 새로운 지식을 맹렬한 속도로 찾아 나서게 만들었다…지리학자뿐 아니라 거의 모든 학문 분야에서 일하는 학자들은 채워 넣을 공백이 있는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의 이론이 완전하지 않으며, 중요한 것들 가운데 아직도 모르는 것이 있다고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p408

1459년의 세계지도는 대륙과 섬과 상세한 설명으로 가득 차 있었던 데 반해 살비아티의 세계지도(1525년)는 거의 공백이다. 아메리카 대륙의 연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어느덧 빈 공간과 만난다. “이 지점 너머에는 뭐가 있지?” 지도는 답을 주지 않는다. 보는 사람에게 닻을 올리고 찾아보라고 요구할 뿐.

-p409

1492년 콜럼버스의 선단 — 세 척의 작은 배에 120명의 선원이 타고 있었다 — 은 정화의 용 떼에 비하면 모기 세 마리에 지나지 않았다.

-p410

로마인들은 설사 그럴 능력이 있었다고 해도 인도나 스칸디나비아의 정복을 꾀하지 않았다. 페르시아인들도 마찬가지로 마다가스카르나 스페인 정복을 시도하지 않았다. 중국인들도 인도네시아나 아프리카를 정복하려 하지 않았다. 중국의 지배자 대부분은 이웃 일본마저도 그들 뜻대로 살게 내버려두었다.

오히려 이상한 것은 근대 초기 유럽인들이 걸린 열병이었다. 그 열병은 그들로 하여금 낯선 문화가 가득한 머나먼 미지의 땅으로 항해하여, 그 해변에 한 발 디딘 뒤, 즉각 이렇게 선언하게끔 만들었다. “이 땅은 모두 우리 왕의 것이다!”

-p411

희귀한 거미와 잊힌 문자

설형문자가 유럽인의 관심을 끈 것은 1618녀이었다…또 다른 주목할 만한 제국주의 학자는 윌리엄 존스였다…그로부터 2년도 지나지 않아 그는 <산스크리트어 The Sanskrit Language>를 출간했다.이것은 비교언어학의 출범을 알리는 기념비적 서적이었다. 여러 저서에서 존스는 고대 인도어로서 힌두교 의례에 쓰이는 신성한 언어가 된 산스크리트어가 그리스어와 라틴어와 놀랍도록 비슷하다는 것을, 그뿐 아니라 이들 언어가 고트어, 켈트어, 고대 페르시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영어와도 비슷하다는 것을 지적했다. 가령 산스크리트어로 ‘엄마’는 ‘matar’인데 라틴어로는 ‘mater’, 고대 켈트어로는 ‘mathir’였다. 존스는 이 모든 언어는 기원이 같았을 것이며 지금은 잊힌 고대의 한 조상언어로부터 발달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인도유럽어족을 발견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p423

인종차별 이론은 수십 년간 명성과 존경을 얻었지만, 이제는 과학자와 정치인 모두에게 극단적 배척의 대상이 되었다. 요즘도 사람들은 인종차별을 상대로 영웅적인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전장이 이미 옮겨졌다는 사실을 모른다.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인종주의가 차지하던 자리는 이제 ‘문화주의’가 차지했다는 것을 말이다. 사실 ‘문화주의’란 말은 없지만, 이제 만들어낼 때가 되었다. 오늘날 엘리트들은 다양한 인간집단이 서로 대조적인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할 때 이것을 문화 간의 역사적 차이라고 말하지, 인종 간의 생물학적 차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건 그들이 타고난 속성이야”라고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건 그들의 문화 탓이야”라고 말한다.

-p428

당연히 이것이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과학은 제국만이 아니라 다른 제도들의 지원도 받았다. 그리고 유럽 제국의 발흥에는 과학 이외의 요인들도 크게 기여했다. 과학과 제국의 일약 성공 뒤에는 특히 중요한 힘 하나가 숨어 있었다. 자본주의다. 만일 돈을 벌려는 사업가들이 없었더라면, 콜럼버스는 아메리카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고, 제임스 쿡은 호주에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며, 닐 암스트롱은 달 표면에 그 작은 발자국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p430

자본주의의 교리

돈은 제국 건설과 과학 진흥에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돈이 이 모든 일의 궁극적 목표일까, 아니면 단지 위험한 필수품일 뿐일까? 근대사에서 경제의 진정한 역할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근대 경제사를 알기 위해서 정말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 단어는 하나밖에 없다. ‘성장 growth’이란 단어다.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근대 경제는 마치 호르몬이 넘쳐나는 십대처럼 성장해왔다. 찾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먹어치우고,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늘 몇 센티미터 더 많이 자랐다.

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경제는 대체로 같은 규모를 유지해왔다… 1인당 생산은 정체 상태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근대에 와서 바뀌었다. 1500년 재화와 용역의 지구 총생산은 약 2,500억 달러였는데, 오늘날 이 수치는 60조 달러까지 증가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150년 연간 1인당 총생산은 550달러였지만 오늘날 모든 남녀와 어린이가 1인당 연평균 8,800달러를 생산한다는 점이다.

-P431

…빵집사례에서 도급업자의 계좌에 들어 있는 액수와 실제로 은행에 있는 돈의 액수의 차이는 곧 맥도넛의 빵집이다. 그리디는 언젠가 그것이 이윤을 불릴 것이라고 믿으면서 은행의 돈을 투자했다. 빵집은 아직 빵 한 덩어리도 굽지 않았지만 맥도넛과 그리디는 앞으로 1년 후면 그 빵집이 매일 수천 개의 덩어리 빵, 롤 빵, 케이크, 쿠키를 팔아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근대 이전에는 이 능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돈이 대표하고 전환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현재 실제로 존재하는 것뿐이었다. 이것은 성장에 심각한 제약을 가했다. 새로운 사업에 돈을 조달하기가 극히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 내에서 사람들은 ‘신용’이라 불리는 특별한 종류의 돈이 상상 속의 재화 — 현재 존재하지 않는 재화 — 를 대표하게 하는데 동의했다. 신용은 미래를 비용으로 삼아 현재를 건설할 수 있게 해준다. 신용은 우리의 미래 자원이 현재 자원보다 훨씬 더 풍부할 것이라는 가정을 토대로 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미래의 수입을 이용해서 현재에 무엇을 건설할 수 있다면, 새롭고 놀라운 기회가 수없이 많이 열린다.

-p434

커지는 파이

사람들은 부의 총량이 더 줄지는 않더라도 한정되어 있다고 믿었다… 사업은 제로섬 게임처럼 보였다. 물론 특정 빵집의 이익이 증가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그 옆 빵집의 희생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파이를 자르는 방법은 수없이 많지만, 어느 방법도 파이를 더 크게 만들지는 못한다. 수많은 문화권에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죄악이라고 결론 내린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예수가 말했듯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려우니라”(마태오 복음 19:24)였다.

-p436

지구의 파이가 커지고 있다는 믿음은 결국 혁명이 되었다.

-p439

스미스의 주장 – 개인적인 수익을 늘리려는 이기적 인간의 욕구는 공동체 부의 기반이다 — 인류 역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아이디어에 속한다. 경제적 관점에서뿐 아니라 도덕적, 정치적 관점에서는 더더욱 혁명적이다. 스미스는 사실상 탐욕이 선한 것이며, 내가 부자가 되면 나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고 말한 것이다. 이기주의가 곧 이타주의라고.

스미스는 경제를 ‘윈-윈 상황’으로 생각하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나의 이익이 곧 너의 이익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둘 다 더 큰 파이 조각을 가질 수 있을 뿐 아니라, 내 파이 조각이 커져야 네 조각도 커질 수 있다. 내가 가난하다면 너 역시 가난해질 것이다. 네가 생산하는 상품이나 용역을 내가 살 수 없을 테니까. 내가 부자라면 너 역시 부자가 될 것이다. 네가 내게 뭔가를 팔 수 있으니까.

스미스는 부와 도덕 간의 전통적 대립을 부정했고, 부자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주었다.

스미스의 이론에서, 사람들은 이웃의 것을 빼앗아서 부자가 되는 게 아니라 전체 파이의 크기를 늘림으로써 부자가 된다. 파이가 커지면 모두에게 이익이다. 따라서 부자는 사회에서 가장 쓸모 있고 인정 많은 사람이다.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성장의 바퀴를 돌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p440

새로운 자본주의 교리에서 가장 신성한 제1계율은 “생산에 따른 이윤은 생산 증대를 위해 재투자되어야 한다”이다.

자본주의가 ‘자본주의’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본주의는 ‘자본’을 단순한 ‘부’와 구별한다. 자본이란 생산에 투자되는 돈과 재화와 자원을 말한다. 반면에 부는 땅에 묻혀 있거나 비생산적 활동에 낭비된다. 비생산적인 피라미드에 자원을 쏟아붓는 파라오는 자본주의자가 아니다. 스페인의 보물선단에서 약탈한 금화를 상자에 담아 카리브해의 어느 섬에 묻어둔 해적은 자본주의자가 아니다. 하지만 열심히 일해서 수입의 일부를 주식시장에 투자한 공장 노동자는 자본주의자다.

-p442

콜럼버스가 투자자를 찾는다

자본주의는 근대 과학의 발흥뿐 아니라 유럽 제국주의의 등장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애초에 자본주의의 신용시스템을 만들어낸 것도 유럽 제국주의였다.

-p446

한편 네덜란드는 바람이 많이 부는 늪지대로, 면적이 좁고 천연자원도 없었으며, 스페인 왕의 통치를 받는 작은 지방이었다. 1568년, 주로 개신교도인 네덜란드인들은 가톨릭을 믿는 스페인 군주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반란군이 무적의 풍차를 상대로 용감하게 싸우는 돈키호테처럼 보였다. 하지만 80년이 지나지 않아 네덜란드인들은 스페인에게서 독립을 쟁취했을 뿐 아니라, 스페인과 그 동맹국인 포르투갈의 자리를 차지하는 데 성공했다. 해양 항로의 주인으로서 네덜란드 세계 제국을 건설하고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로 등극한 것이다.

그 성공의 비결은 신용에 있었다. 네덜란드 소도시의 시민들은 지상에서 싸우는 데 취미가 없었으므로, 용병을 고용해 자기들 대신 스페인과 싸우게 했다. 그동안 자신들은 바다로 나가 점점 더 큰 선단을 꾸렸다… 군대와 선단 덕분에 네덜란드는 세계 무역로를 장악하여 막대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고 그 이익으로 대출을 갚았으며, 그 덕분에 신용도는 더 높아졌다. 암스테르담은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일 뿐 아니라 대륙의 금융 메카로 급성장했다.

-p450

네덜란드 제국을 세운 것은 네덜란드라는 국가가 아니라 상인들이었다. 스페인 왕은 계속해서 자신의 정복사업을 유지했지만,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세금을 올려서 원성을 샀다. 네덜란드 상인들은 돈을 빌려서 정복사업의 자금을 댔지만, 한편으로 자기 회사의 주식을 팔아서 자금을 조달하는 경우가 점점 더 늘어났다.

-p453

회사는 이를 장악하기 위해 강 입구 섬에 뉴암스테르담이란 정착지를 건설했다. 식민지는 거듭해서 원주민들의 위협을 받고 되풀이해서 영국인의 공격을 받은 끝에, 결국 1664년 영국의 수중에 들어갔다. 영국은 섬의 이름을 뉴욕이라고 바꿨다. 네덜란드 서인도회사가 식민지를 원주민과 영국인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세웠던 성벽 wall 의 잔해 위에 깐 포장도로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거리, 즉 월스트리트 Wall Street 가 되었다.

17세기가 끝나가면서 네덜란드는 뉴욕을 잃었고, 금융 및 제국의 심장이라는 유럽 내에서의 지위도 내놓았다.

-p456

미시시피 버블은 역사상 가장 극적인 금융붕괴 사태였고, 프랑스의 금융 시스템은 결코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미시시피 사가 어떤 식으로 정치적 연줄을 이용해서 주가를 조작하고 매수 광풍에 불을 질렀는지 백일하에 드러났기 때문에, 대중은 프랑스 은행 시스템과 프랑스 왕의 현명함에 대해 불신했다. 루이 15세는 신용대출을 받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다. 이것은 해외의 프랑스 제국이 영국의 손에 떨어진 주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프랑스의 해외 제국이 무너지는 동안 대영제국은 급속히 팽창했다. 이전의 네덜란드 제국처럼 대영제국은 대체로 민간 주식회사들에 의해 설립, 운영되고 있었고, 이들 회사는 런던 주식거래소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북미 최초의 영국인 정착지는 런던 사, 플라이마우스 사, 도체스터 사, 매사추세츠 사 같은 17세기 초 주식회사들에 의해 건설되었다. 인도 아대륙을 정복한 것도 영국 정부가 아니라 영국 동인도회사의 용병들이었다. 이 회사의 실적은 심지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넘어섰다… 나폴레옹은 영국을 가게 주인들의 나라라며 비웃었지만, 결국 그 가게 주인들에게 패배했다. 가게 주인들이 세운 제국은 역사상 최대의 제국이었다.

-p459

자본주의자의 지옥

시장에 완전한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 위험한 데는 더욱 근본적인 이유가 존재한다. 애덤 스미스는 구두공이 자신이 낸 흑자를 더 많은 조수를 고용하는 데 쓸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것은 이기적 탐욕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암시했다. 이윤은 생산을 확대하고 사람을 더 많이 고용하는 데 활용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탐욕스러운 구두공이 피고용인들의 월급을 깎고 근로시간은 늘리는 방법으로 이윤을 늘리면 어떻게 될까? 표준답변은 자유시장이 피고용자를 보호해주리라는 것이다…

이론상으로는 물 샐 틈 없는 논리 같지만, 현실에서는 물이 너무 쉽게 샌다. 왕이나 사제가 감독하지 않는 완전 자유시장에서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은 독점을 할 수도 있고, 노동자를 탄압하기로 공모할 수도 있다.

-p465

시장의 힘에 민감하고 이윤에 탐욕을 부리며 경제성장을 바라는 유럽인 농장주들은 노예로 눈을 돌렸다.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 약 1천만 명의 아프라카 노예가 아메리카로 수입되었다. 이 중 약 70페센트가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했다. 노동 환경은 끔찍했다… 노예를 포획하기 위한 전쟁이나 아프리카 내륙에서 아메리카 연안으로 노예들을 옮기는 과정에서 수백만 명이 추가로 사망했다. 모두가 유럽인들이 달콤한 홍차와 캔디를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설탕 농업의 거물들이 막대한 이윤을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자행된 일이었다.

-p467

민간 노예무역 회사들은 암스테르담, 런던, 파리 주식거래소에서 주식을 판매했고, 좋은 투자처를 찾는 중산층 유럽인들이 이 주식을 샀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회사는 배를 사고 선원과 군인을 고용한 뒤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사서 미국으로 수송했다. 노예는 대형 농장의 주인에게 팔렸고, 그 수익은 다시 설탕, 코코아, 커피, 담배, 면화, 럼주 같은 농장의 산물을 구매하는 데 쓰였다. 이들은 유럽으로 돌아와 설탕과 면화를 비싼 값에 판매한 뒤, 다시 돛을 달고 아프리카로 향하여 같은 영업을 되풀이했다. 주주들은 이런 사업 방식에 매우 만족해했다. 18세기 내내 노예무역 투자에 대한 연간 수익률은 약 6퍼센트였다. 현대의 컨설턴트라면 누구나 재깍 인정할 만한 엄청난 돈벌이였다.

기독교나 나치즘 같은 종교는 불타는 증오심 때문에 수백만 명을 살해했다. 자본주의는 차가운 무관심과 탐욕 때문에 수백만 명을 살해했다. 대서양 노예무역은 아프리카인에 대한 인종적 증오에서 생긴 것이 아니다. 주식을 구매한 개인이나 그것을 판매한 중개인 노예무역 회사의 경영자는 아프리카인에 대해 겨의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탕수수 농장 소유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농장주들이 농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았고, 그들이 원한 유일한 정보는 손익을 담은 깔끔한 장부였다.

-p468

1908년 이후, 특히 1945년 이후 자본주의의 탐욕에는 어느 정도 고삐가 죄어졌는데, 여기에는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불평등은 여전히 만연했다. 2014년의 경제적 파이는 1500년보다 크지만, 분배는 너무나 불공평해서 하루 종일 힘들게 일한 아프리카의 농부와 인도네시아의 노동자가 집에 가져오는 식량은 5백 년 전보다 더 적다. 농업혁명과 마찬가지로, 현대 경제의 성장은 거대한 사기로 드러날지도 모른다.

-p470

이용 가능한 에너지 전환 장치라고는 사람과 동물뿐이었으므로, 거의 모든 인간 활동의 핵심은 근력이었다. 인간의 근육은 수레와 집을 만들었고, 황소의 근육은 밭을 갈았으며, 말의 근육은 물건을 운반했다. 이들 근육 기계에 연료를 공급한 에너지원은 단 하나, 식물이었다… 역사를 통틀어 인간이 행한 거의 모든 일은 근력을 바탕으로 했고, 그 근원은 식물이 포획한 태양에너지에 있었다.

그 결과 인류의 역사는 두 가지 주요 주기의 지배를 받았는데, 식물의 성장 주기와 태양에너지의 변화 주기(낮과 밤, 여름과 겨울)였다.

-p475

화약이 발명되고 나서 약 6백 년 후에야 효과적인 대포가 발달했다. 심지어 그때도 열을 운동으로 전환한다는 아이디어는 직관적인 것이 아니었기에 열을 이용해 물건을 움직이는 차세대 기계가 발명된 것은 또다시 3세기가 흐른 다음의 일이었다.

-p476

눈 깜짝할 새 영국은 세계의 공장이 되었다. 하지만 이보다 중요한 점은 증기기관을 갱도에서 끄집어내면서 중요한 심리적 장벽이 깨졌다는 사실이었다. 직조기를 돌리기 위해 석탄을 땔 수 있다면 가령 운송 수단처럼 다른 것들을 움직이는 데도 같은 방법을 이용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p477

중국 연금술사들이 화약을 발견한 순간부터 터키의 대포가 콘스탄티노플의 성벽을 무너뜨린 시점 사이에 6백 년이 흘렀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이 모든 종류의 질량은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다 — 이것이 E = mc2 의 의미다 — 는 사실을 밝힌 지 불과 40년 만에 원자폭탄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흔적도 없이 날려버렸고 핵발전소는 전 세계에 우후죽순 솟아났다.

-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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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thought on “《사피엔스(Sapiens)》독서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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