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신흥 종교: 데이터교

실리콘 밸리에서는 이른바 “데이터교”라는 새로운 종교가 광풍처럼 몰아친다고 한다.

데이터교는 우주가 데이터의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떤 현상이나 실체의 가치는 데이터 처리에 기여하는 바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다. 이색적인 비주류 개념 같다는 인상을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이 개념은 이미 과학계의 대부분을 정복했다고 한다.

이 종교에 따르면 경제란 욕망과 능력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해 그 데이터를 결정으로 전환하는 메커니즘이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자유시장 자본주의와 국가가 통제하는 공산주의는 서로 경쟁하는 이념, 윤리적 신조, 정치제도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이 둘은 경쟁하는 데이터 처리 시스템이다. 자본주의는 데이터를 나누어 처리하는 반면, 공산주의는 중앙에서 모두 처리한다. 공산주의가 20세기에 더욱 일찍 산업화의 성공을 이루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시장이 이길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단기간(이를테면 빠른 산업화, 또는 빠르게 구세계를 타파하는데)에는 더욱 효율적이지 모르지만, 장기간에서는 자유시장이 정보처리에 더욱 효율적이고 환경변화에 덜 취약하기 때문이다. 즉 robustness, fault-tolerance 가 더 좋기 때문이다.

실제로 데이터교도들은 인간의 지식과 지혜보다는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더 신뢰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빅데이터 미래세계를 구축하려 한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증권거래소는 인간이 창조한 가장 빠르고 가장 효율적인 데이터 처리 시스템이다. 성공적인 과학 실험, 일본의 정치 스캔들, 아이슬란드의 화산 폭발은 물론, 태양 표면의 불규칙한 활동조차 주가에 영향을 미친다. <뉴욕타임스>에 대서특필된 사건들이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데는 단 15분간의 거래면 충분하다고 추산된다.

자유시장에서는 한 프로세서가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다른 프로세서들이 잽싸게 그 실수를 활용한다.

자본주의가 냉전에서 승리한 것은, 적어도 기술 변화가 가속화되는 시대에는 중앙 집중식 데이터 처리보다 분산식 데이터 처리가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독재와 민주주의도 데이터 처리로 해석된다. 독재는 중앙 집중식 처리 방법이고 민주주의는 분산식 처리이다.

오늘날 인터넷이 사람들의 주권을 약화시키고 국경을 무시하고 사생활을 없애고 전 지구적 안보를 엄청나게 위협하는 자유로운 무법지대로 되었다. 정부라는 거북이는 기술이라는 토끼를 따라잡지 못한다.

사람들은 권력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지만 그곳이 어딘지는 모른다. 영국 유권자들은 권력이 유럽연합으로 이동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브렉시트에 투표하지만 슬픈 진실은 권력이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21세기 초에 정치는 장대한 비전을 잃었다. 정부는 나라를 운영할 뿐 이끌지 못한다. 교사들의 급여가 제때 지급되고 하수도가 넘치지 않게 할 뿐, 20년 뒤 나라가 어디로 갈지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다. 20세기의 거대한 정치적 비전들이 우리를 아우슈비츠, 히로시마, 대약진 운동으로 이끌었음을 생각하면, 근시안적인 관료들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이런 무위와 무지는 심지어 심오한 지혜로 재해석되기까지 한다.

성공한 다른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데이터교 역시 포교를 한다. 이런 계명들에는 “가능한 많은 매체와 연결해 가능한 많은 정보를 생산하고 소비함으로써 데이터 흐름을 극대화하라”, “연결되기를 원치 않는 이단까지 포함해 모든 것을 시스템에 연결하라.” (여기서 모든 것이란 인간만을 말하는게 아니라 말 그대로 “모든 것”이다.)

자동차들은 서로 연락할 것이고 정글의 나무들은 날씨와 이산화탄소 농도를 보고할 것이다. 우주의 어느 한 부분도 생명의 거대한 웹과 연결이 끊겨서는 안된다. 연결이 선이고, 연결을 막는 것이 악이라고 간주된다.

사람들은 스스로 데이터 흐름의 일부가 되기를 바란다. 설령 그것이 자신의 사생활, 자율, 개인성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해도 상관없다. 개인은 점점 누구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거대 시스템 안의 작은 칩이 되어가고 있다.

자유시장 자유주의자들이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을 믿듯이, 데이터교도들은 데이터 흐름의 보이지 않는 손을 믿는다. 전 지구적 데이터 처리 시스템이 전지전능해지는 만큼, 시스템과 연결되는 것이 모든 의미의 원천이 된다.

전통적 종교들도 당신이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우주적 규모의 장대한 계획의 일부이고, 신은 매순간 당신을 지켜보며 당신의 생각과 감정에 신경 쓴다고 말했다. 데이터교들은 그것을 실제로 바꾸려고 한다.

그들은 경험은 공유되지 않으면 가치가 없고, 우리는 자기 안에서 의미를 발견할 필요가 없고 실은 발견할 수 없다고 믿는다. 20년전 일본인 관광객들은 항상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온갖 것을 찍는다는 이유로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모두가 그렇게 한다. 자기만의 일기장에 일기를 쓰는 것(이전 세대들이 흔히 했던 인본주의적 관습)은 요즘 많은 젊은이들에게는 완전히 쓸데없는 짓으로 보인다. 아무도 읽을 수 없는 것을 왜 쓰는가? 새로운 모토는 이렇게 말한다. “경험하면 기록하라. 기록하면 업로드하라. 업로드하면 공유하라.”

그것은 트렌드의 문제가 아니다. 생존의 문제이다. 우리는 자신이 여전히 가치 있다는 것을 자기 자신과 시스템에 증명해야 한다.

인본주의 시대때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게 귀 기울이고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면 됐다. 자기 내면에 귀 기울이는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실용적 지침으로 석양을 지켜보고, 괴테를 읽고, 일기를 쓰고, 좋은 친구와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고, 민주적 투표를 시행하는 것 같은 일들을 권했다. 데이터 교가 그린 미래에서는 이 모든 것이 필요 없다. 시스템에 묻기만 하면 된다.

데이터 교의에 대한 비판적 검토는 21세기의 가장 큰 과학적 과제일 뿐 아니라 가장 긴급한 정치적, 경제적 과제일 것이다.

남북한이 다른 역사적 경로를 걷고 있는 이유를 양쪽이 믿는 이념이 다르기 (달랐기) 때문이라고 본다면, 사피엔스가 어디로 갈지를 결정하는 데도 사람들이 지어내고 믿는 이야기들이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뭐? 이상 내용에 대해 할 말이 있다고? 반박할 말이 있다고? 찬양할 말이 있다고? 이상 내용들은 그냥 유발 하라리의 새로 나온 책 <호모 데우스>에서 비열하게 막 따온 글귀들에 불과하니 이 문장들에 대한 반박은 웃기겠지? 우선 <호모 데우스>를 사서 통째로 다 읽고 반박하도록 하자. 그렇지 않으면 풍차와 싸우는 격이 되지 않겠는가 허허.

그리고 이미 눈치챘겠지만 사실 이 글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 두 권의 책에 대한 광고에 불과하다. 헤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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