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K의 시각으로 바라본 블록체인 기술

KK 는 케빈 켈리(Kevin Kelly)의 이니셜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새 착상은 불확실성의 더미다.

창안자가 자신의 참신한 착상이 세상을 바꾼다거나 전쟁을 종식시킨다거나 가난을 없애거나 대중을 즐겁게 할 것이라고 얼마나 확신하든 간에, 사실 그것이 어찌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 착상의 단기적인 역할조차 불명료하다. 역사는 어떤 기술의 발명자 자신이 기대했던 것이 빗나간 사례로 가득하다.

토머스 에디슨은 자신의 축음기가 죽어 가는 사람의 마지막 유언을 기록하는 데 주로 쓰일 것이라고 믿었다. 처음에 라디오에 자금을 댄 사람들은 그것이 시골 농민들에게 설교를 전파하는 데 이상적인 장치라고 믿고 그렇게 했다. 비아그라는 원래 심장약으로서 임상 시험을 했다. 인터넷은 원래 재난에 대비한 예비 통신망으로 창안된 것이다. 위대한 착상 가운데 그것이 이윽고 이룬 위대함을 향해 처음부터 나아간 것은 거의 없다. 즉 어떤 기술이 실제로 ‘있기’ 전에 그것이 어떤 해를 미칠지 예측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거의 예외 없이 기술은 자신이 자라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알지 못한다. 한 발명이 테크늄에서 자신의 역할을 세부적으로 다듬으려면 초기 채택자들과 많이 만나고 다른 발명들과 많이 충돌해야 한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젊은 기술도 나중에 더 나은 생계 수단을 마련하기에 앞서 첫 직업에서 실패를 경험하곤 한다.

처음부터 원래 역할을 그대로 유지하는 기술은 드물다. 발명자가 기대한(그리고 수지가 맞는!) 용도에 구애받다가 그 예상이 잘못되었음이 금방 드러나고, 일련의 대안(그리고 수지가 덜 맞는) 용도로 쓰인다고 선전되다가, 이윽고 현실이 그 기술을 거의 예상하지 않았던 사소한 용도로 이끄는 새 발명이 훨씬 더 많다. 때로 그 사소한 용도는 아주 파괴적인 사례로 활짝 꽃을 피워서 표준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성공이 이루어지면, 앞서 있던 실패들은 잊힌다.

에디슨은 최초로 축음기를 만든 지 1년 뒤까지도 자신의 발명품이 어디에 쓰일 수 있을지 고심하고 있었다. 그 발명품을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 온갖 방향으로 별별 생각을 다했다. 그는 자신의 착상이 맹인을 위한 구술 기계나 오디오북, 혹은 말하는 시계, 뮤직박스, 발음 훈련 장치, 유언 기록 장치, 자동 응답 기계를 탄생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축음기의 가능한 용도를 죽 나열한 목록 맨 끝에 그는 거의 나중에 떠올린 듯이, 녹음된 음악을 연주한다는 착상을 덧붙였다.

레이저 장치는 미사일을 쏘아 떨어뜨릴 정도로 강력한 것까지 개발되었지만, 주로 바코드나 영화 DVD를 읽는 용도로 수십억 개씩 만들어진다. 트랜지스터는 방만 한 컴퓨터의 진공관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오늘날 주로 카메라, 전화기, 통신 장비의 조그마한 두뇌에 집어넣기 위해 제조되고 있다. 휴대전화는(……) 음, 휴대전화로 출발했다. 그리고 처음 수십년 동안은 그러했다. 하지만 차츰 성숙해져 휴대전화 기술은 태블릿, 전자책, 비디오 플레이어를 위한 이동 컴퓨터 플랫폼이 되고 있다. 기술에서는 직업을 바꾸는 것이 예외가 아니라 표준이다.

이미 세계에 존재하는 착상과 기술의 수가 많을수록, 우리가 새것을 도입할 때 나타날 가능한 조합과 이차 반응의 수도 더 많아질 것이다. 해마다 수백만 가지의 새로운 착상이 도입되는 테크늄에서 결과를 예측해 수학적으로 처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새것이 기존 일을 더 잘하게 해 준다고 상상하는 본능적인 성향이 있으며, 그 때문에 예측은 더 어려워진다. 그것이 바로 최초의 자동차가 ‘말 없는 마차’라고 불린 이유다. 최초의 영화는 그저 연극을 찍은 다큐멘터리 필름이었다. 새로운 것을 성취하고, 새로운 전망을 드러내며,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새로운 매체로서의 사진술의 온전한 잠재력을 깨달은 것은 시간이 좀 흐른 뒤였다. 아직도 똑같은 맹점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는 오늘날의 전자책을 보편적인 공용 도서관을 자아내는 근원적인 힘을 지닌 강력한 텍스트의 실이 아니라 전자종이에 뜨는 일반 책이라고 여긴다. 우리는 유전자 검사가 혈액 검사와 비슷한 것, 즉 인생에서 변하지 않는 어떤 값을 얻기 위해 한 차례 하는 무언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변화하고 환경과 상호작용함에 따리 시시때때로 유전자 서열 분석을 하는 이 시점에 말이다.

가장 참신한 것들은 예측 가능성이 아주 낮다. 화약을 발명한 중국인은 총의 등장을 내다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전자기의 발견자인 윌리엄 스터전(William Sturgeon)은 전기 모터를 예측하지 못했다. 필로 판스워스(Philo Farnsworth)는 자신의 음극관에서 텔레비전 문화가 출현하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지난 세기가 시작될 때의 광고를 보면, 최신 전화기가 초청장, 주문서, 안전하게 도착했다는 확인 같은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망설이는 소비자에게 판매하려 애썼음을 알 수 있다. 광고주들은 전화기를 마치 더 편리한 전신인 양 판매했다. 대화를 주고받는 장치라고 주장한 광고주는 아무도 없었다.

넓은 간선도로, 차에 탄 채 주문을 하는 식당, 안전띠, 길 안내 장치, 연비를 향상시키는 디지털 계기판의 집적체인 오늘날의 자동차는 100년 전 포드 T 모델과는 다른 기술이다. 그리고 그 차이의 대부분은 영속하는 내연기관보다는 주로 이차 혁신에서 비롯된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아스피린은 작년의 아스피린이 아니다. 몸에 든 다른 약물들, 수명 변화와 알약을 삼키는 습관(하루에 한 알씩!), 싼 값 등의 맥락을 놓고 볼 때, 그것은 버드나무 껍질의 에센스에서 얻은 전통 약물이나 100년 전 바이엘이 내놓은 최초의 합성 약물과 다른 기술이다. 비록 다 똑같은 화학물질인 아세틸살리실산이지만. 기술은 번창함에 따라 변천한다. 사용됨에 따라 개조된다. 보급됨에 따라 이차, 삼차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거의 모든 곳에 존재하게 될 때 거의 언제나 전혀 예측하지 않은 효과를 낳는다.

반면에 어떤 기술에 관한 처음의 원대한 생각들은 대부분 흐릿해지면서 잊힌다. 불운한 소수의 기술은 엄청난 골칫거리가 된다. 발명자가 의도했던 것과 전혀 다른 의미에서 엄청난 것이 된다. 탈리도마이드는 임신부를 위한 위대한 착상이었지만, 태아에게 공포가 되었다. 내연기관은 이동에는 아주 좋지만 호흡에는 끔찍하다. 프레온은 저렴한 비용으로 물건을 차갑게 유지시켰지만, 지구를 보호하는 자외선 필터를 제거했다. 일부 사례에서는 이런 효과의 변화가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에 불과하다. 하지만 많은 사례에서는 전면적인 직종 바꾸기에 해당한다.

기술을 정직하게 살펴본다면, 각 기술이 미덕뿐 아니라 단점도 지님을 알 수 있다.

악덕이 없는 기술은 없으며 중립적인 기술도 없다. 한 기술의 결과는 그것의 파괴적인 특성과 함께 퍼진다. 강력한 기술은 좋은 쪽과 나쁜 쪽 양 방향으로 강력할 것이다. 반대 방향으로 강력하게 파괴적이지 않으면서 강력하게 건설적인 기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큰 해를 끼치는 쪽으로 크게 왜곡시킬 수 없는 위대한 착상이란 없는 것처럼. 아무튼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마음이라 해도 여전히 살인적인 생각을 품을 수 있다. 사실 어떤 발명이나 착성은 엄청나게 악용될 수 없는 한 진정으로 엄청나지 않다. 그것이 기술 예측의 제1법칙이 되어야 한다. 즉 신기술의 약속이 클수록 그것이 해로울 잠재력도 크다. 그 말은 인터넷 검색 엔진, 하이퍼텍스트, 웹 같은 사랑받는 새로운 기술들에도 들어맞는다. 대단히 강력한 이런 발명들은 르네상스시대 이래로 본 적이 없는 수준으로 창의 성을 해방시켜 왔지만, 악용될 때(악용된다면이 아니라), 그것들이 개인의 행동을 추적하고 예견하는 능력은 끔찍해질 것이다. 어떤 신기술이 전에는 결코 본 적 없는 혜택을 탄생시킬 가능성이 높다면, 결코 본 적이 없는 문제를 탄생시킬 가능성도 높을 것이다.

이 딜레마의 확실한 치료법은 최악을 예상하는 것이다. 그것은 예방 원칙(Precautionary Principle)이라는 신기술에 널리 쓰이는 한 접근법의 산물이다. 예방 원칙은 1992년 지구 정상 회의에서 리우 선언의 일부로 처음 고안되었다. 원래는 “철저한 과학적 확신이 부족하다고 해서 그것이 환경 파괴를 예방할 비용 효율이 높은 수단을 미룰 근거로 쓰여서는 안 된다.”라고 권하는 내용이었다.

다시 말해 피해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이 불확실성 때문에 추정된 피해를 멈추는 일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예방 원리는 그 뒤로 여러 차례 수정되고 변경되었고 시간이 흐러면서 더 금지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최신 수정본은 이렇다. “불확실하지만 상당한 피해를 입힐 가능성을 보이는 활동들은 그 활동의 옹호자가 그것이 감지할 수 있는 피해 위험이 전혀 없다는 것을 보여 주지 못한다면 금지되어야 한다.”

예방 원칙의 한 수정판은 유럽연합의 입법 기준 역할을 하며(마스트리히트 조약에 포함되어 있다.), 유엔 기후 변화 협약에도 들어 있다. 미국 환경보호국과 청정공기법도 오염 억제 수준을 정할 때 그 접근법을 쓴다. 이 원칙은 포틀랜ㄷ, 오리건, 샌프란시스코 같은 녹색 도시의 조례에도 들어 있다. 그것은 생명윤리학자들과 기술을 서둘러 선택하는 것에 반대하는 비판자들이 선호하는 기준이다.

예방 원칙의 모든 판본에서는 한 가지 공통 공리가 담겨 있다. 어떤 기술을 받아들이려면 먼저 그것이 아무런 해가 없다는 점이 밝혀져야 한다는 것. 즉 안전성이 증명된 뒤에 보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전성이 검증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금지되거나 감축되거나 수정되거나 내버리거나 무시해야 한다. 다시 말해 새 고안물에 대한 첫 번째 방응은 그것의 안전성이 확증되기 전까지는 무반응이어야 한다. 어떤 혁신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멈추어야 한다. 그것을 생활에 이용하려는 시도는 과학이 확실하게 좋다고 말한 뒤에 이루어져야 한다.

언뜻 보면 합리적이고 신중한 접근법인 듯하다. 해로움은 예견하고 미리 대처해야 한다. 후회하는 것보다 안전한 것이 더 나으니까. 불행히도 예방 원칙은 이론상으로는 잘 작동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철학자이자 컨설턴트인 맥스 모어(Max More) 는 말한다. “예방 원칙이 정말 아주 잘하는 것이 하나 있다. 기술 발전을 멈추는 것이다.” 그 원칙의 실상을 폭로하는 책을 쓴 카스 선스타인(Cass R. Sunstein)은 말한다. “우리는 예방 원칙이 나쁜 방향으로 이끌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가치가 있음에도 어떤 방향으로도 이끌지 않기 때문에 그것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모든 좋은 것은 어딘가에서 해를 끼치므로, 절대적인 예방 원칙이라는 엄격한 논리에 따르면 어떤 기술도 허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 더 개방적인 형태의 원칙도 실기술을 제때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론이 어떠하든 간에, 확률이 낮다는 것과는 별개로 모든 위험을 현실적으로 하나하나 밝혀낼 수는 없으며, 또 있을 법하지 않은 모든 위험을 밝혀내려는 노력은 더 가능성이 높은 잠재 혜택을 못 보게 방해한다.

예를 들어 말라리아는 해마다 전 세계에서 3~5억 명이 감영되며 2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죽지 않더라도 몸이 쇠약히지고 그것은 가난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는다. 하지만 1950년대에 집 안 곳곳에 살충제인 DDT를 뿌리기 시작하면서 말라리아 발생률은 70퍼센트나 줄어들었다. DDT는 대단히 잘 듣는 살충제였기에 농민들은 면화 밭에 몇 톤씩 열심히 뿌려 댔다. 그 분자의 부산물든은 이윽고 지구의 물 순환에 휩쓸려 돌다가 동물의 지방 세포로 들어갔다. 생물학자들은 그것이 일부 맹금륭의 번식률을 떨어뜨리고 몇몇 수역에서 어류를 비롯한 수생생물 종들을 사멸시킨다고 비난했다. 1972년 미국은 DDT의 생산과 이용을 금지했다. 다른 나라들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DDT 살포가 중단되자,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말라리아가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여 1950년대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아프리카에서는 다시 가정에 DDT를 뿌리는 계획을 세웠지만, 그 일에는 자금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세계은행을 비롯한 구호 기관들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되었다. 1991년 91개국과 유럽연합은 DDT를 전면 금지한다는 조약에 서명했다. 예방 원칙에 토대를 둔 행동이었다. 즉 DDT는 아마도 나쁠 것이며, 후회하기보다는 안전한 편이 더 낫다는 것이다. 사실 DDT가 인간을 해친다는 사실이 드러난 사례는 전혀 없으며, DDT를 소량 집에 뿌리는 것이 환경에 얼마나 피해를 입히는지도 측정된 적이 없다. 그러나 DDT가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은 아무도 증명하지 못했다. 그것이 좋은 일을 할 능력이 있다는 사실은 검증되었지만 말이다.

위험 회피라는 문제로 들어가면, 우리는 합리적이지 않다. 원하는 위험을 골라서 논쟁을 벌인다. 우리는 운전의 위험은 제쳐 두고 비행의 위험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치아 액스선의 미미한 위험에는 반응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충치라는 더 큰 위험은 외면할 수도 있다. 백신의 위험에 반응하면서 전염병의 위험은 모른 체할 수도 있다. 살충제의 위험에는 집착하면서 유기농 식품의 위험은 무시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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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houghts on “KK의 시각으로 바라본 블록체인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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