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은 일하는 자산이 아니다?

한국은 국부가 부동산에 집중돼있다.

출처: https://news.joins.com/article/23551833

부동산은 일하는 자산이 아닐까?

요즘 핫한 김희애 배우가 청담동에 올리고있는 300억짜리 빌딩을 예로 들어보자.

건물과 건물은 경쟁하고, 땅과 땅은 경쟁한다. 시장이 효율적이라는 전제하에 상인들은 상가가 그만큼의 가치를 제공한다고 현명하게 판단하기에 그만큼의 월세를 지불할 것이 아닌가.

자고로 토지는 중요한 생산자산이었다.

주택도 살펴보자.

노량진 고시촌을 예로 들어보자. 노량존 고시촌은 일을 안하는가? 사람들에게 가치를 제공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수많은 청년들의 꿈을 응원하고, 현실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고시촌 수험생들 또한 그 가치를 인정해 그에 상응하는 월세를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심지어 모든 주택이 다 그렇다. 가장 근본적인 생산력인 인력자본에 필수적인 ‘의, 식, 주’ 중의 ‘주’를 제공하는 만큼, 필수적인 기능을 제공한다고 할 수 있다. 그 안에서 휴식하고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비바람을 막아준다. 이것을 가지고 ‘일하지 않는다’라고 한다면 도대체 무엇이 ‘일’이란 말인가?

서울 주택 임대료 시세가 지방보다 높게 형성되어 있는 원인은, 시장 논리에 의해서, 서울 주택이 ‘사용 가치’를 보다 많이 제공하고 있다고 시장으로부터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도시를 살펴보자.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 에드워드 글레이저는 저서 <도시의 승리>에서 도시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말한다.

미국 국토 넓이의 3퍼센트에 해당하는 도시에 2억 4,300만 명에 이르는 미국인이 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생산적인 대도시인 도쿄와 그 주변에는 3,600만 명이 살고 있다. 인도 뭄바이 중심에는 1,200만 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상하이의 규모도 뭄바이 못지않게 크다. 전 세계 인구가 각자 개인용 단독주택을 갖고 미국 텍사스 주에 모여살 수 있을 만큼 엄청나게 넓은 이 지구상에서 우리는 도시를 선택한다.

예전보다 더 저렴하게 장거리 여행을 가거나 미국 중부의 미주리 주에서 카스피 해 서부 연안에 있는 나라인 아제르바이잔까지 장거리전화를 걸 수 있게 됐지만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대도시에 더 가까운 곳에 밀집해서 살고 있다. 매달 5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개발도상국의 도시들에 모여들고 있음며, 2011년 기준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은 도시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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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돈의 역사

쿠심이 서명했다

초기 단계의 쓰기는 사실과 숫자에 한정되었다. 만일 위대한 수메르 소설이 존재했더라도, 점토판에 쓰이지는 않았다. 쓰기는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고, 기호를 읽을 줄 아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장부 기록 이외의 일에 활용할 이유가 없었다. 만일 우리가 5천년 전의 선조들이 남긴 지혜의 말을 찾으려 한다면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상들이 남긴 가장 초기의 메시지는 가령 이랬기 때문이다. ‘보리 29,086자루 37개월, 쿠심.’ 이 문장의 의미는 아마도 ‘37개월에 걸쳐 보리 29,086자루를 받았다. 서명자 쿠심’일 것이다. 아, 슬프다, 역사상 최초의 문서에 담긴 것이 철학적 통찰도, 시도, 전설도, 심지어 왕의 승리도 아니었다니. 세금 지불액과 쌓이는 빚의 액수와 재산의 소유권을 기록한 평이한 경제문서였다니.-p183

금이라는 복음

철학자와 사상가와 예언자는 수천년에 걸쳐 돈을 흉보면서 돈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매도했다.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한편 돈은 인류가 지닌 관용성의 정점이다. 돈은 언어나 국법, 문화코드, 종교 신앙, 사회적 관습보다 더욱 마음이 열려있다. 인간이 창조한 신뢰 시스템 중 유일하게 거의 모든 문화적 간극을 메울 수 있다. 종교나 사회적 성별, 인종, 연령, 성적 지향을 근거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유일한 신뢰 시스템이기도 하다. 돈 덕분에 서로 알지도 못하고 심지어 신뢰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p266

돈의 대가

돈에는 이보다 더욱 어두운 면도 존재한다. 돈이 서로 모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보편적인 신뢰를 쌓게 해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신뢰는 인간이나 공동체, 혹은 신성한 가치가 아니라 돈 그 자체 그리고 돈을 뒷받침하는 비인간적 시스템에 투자된다. 우리는 이방인이나 이웃집 사람을 신뢰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지닌 주화를 신뢰할 뿐이다. 그들에게서 주화가 떨어지면 우리의 신뢰도 사라진다. 돈이 공동체, 신앙, 국가라는 댐을 무너뜨리면, 세상은 하나의 크고 비정한 시장이 될 위험이 있다.

진화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다른 사회적 포유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이민족 공포증을 지닌 존재가 되었다.사피엔스는 인간을 본능적으로 ‘우리’와 ‘그들’의 두 부류로 나눈다. 우리란 너와 나, 언어와 종교와 관습이 같은 사람들을 말한다.-p280

2단계 카오스는 스스로에 대한 예측에 반응하는 카오스다. 그러므로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다. 시장이 그런 예다.정치도 2단계 카오스다. 소련 연구가들은 1989년 혁명을 예측하지 못했고, 중동 전문가들은 2011년 ‘아랍의 봄’ 혁명을 예측하지 못했다. 이를 두고 비난하고 혹평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런 비난은 공정하지 못하다. 혁명은 그 정의상 예측이 불가능하다. 예상 가능한 혁명은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p341

비어 있는 지도

무지를 인정하지 않은 콜럼버스는 여전히 중세인이었다. 그는 자신이 세계 전체를 안다고 확신했으며, 심지어 스스로 이룬 기념비적인 발견도 그 확신을 흔들지 못했다.

최초의 근대인은 아메리고 베스푸치였다. 그는 1499년~1504년 사이에 여러 차례 아메리카 탐험대에 참가했던 이탈리아 선원이었다…대륙을 그려 넣은 발트제뮐러는 이름을 부여해야 했다. 그는 그것을 발견한 사람이 아메리고 베스푸치라고 잘못 알고 있던 터라, 이 대륙에 아메리고를 기리는 이름을 붙였다. 아메리카라고. 발트제뮐러의 지도는 인기를 끌었고, 수많은 다른 지도 제작자들에 의해 복제되었다. 그가 새 땅에 부여한 이름도 함께 퍼져나갔다. 세계 4분의 1에, 즉 일곱 대륙 중 두 곳에 거의 무명이던 이탈리아인의 이름이 붙은 것이다. 그가 유명할 이유라고는 “우리는 모른다”라고 말할 용기가 있었던 점 외에 아무것도 없다. 이 사실에는 어떤 시적 정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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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가 말하는 ‘빚’의 역사

자본주의의 교리

돈은 제국 건설과 과학 진흥에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돈이 이 모든 일의 궁극적 목표일까, 아니면 단지 위험한 필수품일 뿐일까? 근대사에서 경제의 진정한 역할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근대 경제사를 알기 위해서 정말로 이해할 필요가 있는 단어는 하나밖에 없다. ‘성장 growth’이란 단어다.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근대 경제는 마치 호르몬이 넘쳐나는 십대처럼 성장해왔다. 찾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먹어치우고,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늘 몇 센티미터 더 많이 자랐다.
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경제는 대체로 같은 규모를 유지해왔다… 1인당 생산은 정체 상태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근대에 와서 바뀌었다. 1500년 재화와 용역의 지구 총생산은 약 2,500억 달러였는데, 오늘날 이 수치는 60조 달러까지 증가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150년 연간 1인당 총생산은 550달러였지만 오늘날 모든 남녀와 어린이가 1인당 연평균 8,800달러를 생산한다는 점이다.-P431

빵집사례에서 도급업자의 계좌에 들어 있는 액수와 실제로 은행에 있는 돈의 액수의 차이는 곧 맥도넛의 빵집이다. 그리디는 언젠가 그것이 이윤을 불릴 것이라고 믿으면서 은행의 돈을 투자했다. 빵집은 아직 빵 한 덩어리도 굽지 않았지만 맥도넛과 그리디는 앞으로 1년 후면 그 빵집이 매일 수천 개의 덩어리 빵, 롤 빵, 케이크, 쿠키를 팔아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근대 이전에는 이 능력이 제한적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돈이 대표하고 전환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현재 실제로 존재하는 것뿐이었다. 이것은 성장에 심각한 제약을 가했다. 새로운 사업에 돈을 조달하기가 극히 힘들었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 내에서 사람들은 ‘신용’이라 불리는 특별한 종류의 돈이 상상 속의 재화 — 현재 존재하지 않는 재화 — 를 대표하게 하는데 동의했다. 신용은 미래를 비용으로 삼아 현재를 건설할 수 있게 해준다. 신용은 우리의 미래 자원이 현재 자원보다 훨씬 더 풍부할 것이라는 가정을 토대로 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미래의 수입을 이용해서 현재에 무엇을 건설할 수 있다면, 새롭고 놀라운 기회가 수없이 많이 열린다.-p434

커지는 파이

사람들은 부의 총량이 더 줄지는 않더라도 한정되어 있다고 믿었다… 사업은 제로섬 게임처럼 보였다. 물론 특정 빵집의 이익이 증가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그 옆 빵집의 희생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파이를 자르는 방법은 수없이 많지만, 어느 방법도 파이를 더 크게 만들지는 못한다. 수많은 문화권에서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죄악이라고 결론 내린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예수가 말했듯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려우니라”(마태오 복음 19:24)였다.-p436

지구의 파이가 커지고 있다는 믿음은 결국 혁명이 되었다.-p439

스미스의 주장 – 개인적인 수익을 늘리려는 이기적 인간의 욕구는 공동체 부의 기반이다 — 인류 역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아이디어에 속한다. 경제적 관점에서뿐 아니라 도덕적, 정치적 관점에서는 더더욱 혁명적이다. 스미스는 사실상 탐욕이 선한 것이며, 내가 부자가 되면 나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고 말한 것이다. 이기주의가 곧 이타주의라고.

스미스는 경제를 ‘윈-윈 상황’으로 생각하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나의 이익이 곧 너의 이익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둘 다 더 큰 파이 조각을 가질 수 있을 뿐 아니라, 내 파이 조각이 커져야 네 조각도 커질 수 있다. 내가 가난하다면 너 역시 가난해질 것이다. 네가 생산하는 상품이나 용역을 내가 살 수 없을 테니까. 내가 부자라면 너 역시 부자가 될 것이다. 네가 내게 뭔가를 팔 수 있으니까.

스미스는 부와 도덕 간의 전통적 대립을 부정했고, 부자에게 천국의 문을 열어주었다.

스미스의 이론에서, 사람들은 이웃의 것을 빼앗아서 부자가 되는 게 아니라 전체 파이의 크기를 늘림으로써 부자가 된다. 파이가 커지면 모두에게 이익이다. 따라서 부자는 사회에서 가장 쓸모 있고 인정 많은 사람이다.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성장의 바퀴를 돌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p440

새로운 자본주의 교리에서 가장 신성한 제1계율은 “생산에 따른 이윤은 생산 증대를 위해 재투자되어야 한다”이다.

자본주의가 ‘자본주의’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본주의는 ‘자본’을 단순한 ‘부’와 구별한다. 자본이란 생산에 투자되는 돈과 재화와 자원을 말한다. 반면에 부는 땅에 묻혀 있거나 비생산적 활동에 낭비된다. 비생산적인 피라미드에 자원을 쏟아붓는 파라오는 자본주의자가 아니다. 스페인의 보물선단에서 약탈한 금화를 상자에 담아 카리브해의 어느 섬에 묻어둔 해적은 자본주의자가 아니다. 하지만 열심히 일해서 수입의 일부를 주식시장에 투자한 공장 노동자는 자본주의자다.-p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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