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더리움 커뮤니티와 EOS 커뮤니티 사이의 논쟁- 3탄

회고

이더리움 커뮤니티와 EOS 커뮤니티 사이의 논쟁

이더리움 커뮤니티와 EOS 커뮤니티 사이의 논쟁- 2탄

배경

이더리움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이 최근에 《거버넌스 제2장: 금권정치 – 여진히 나쁜》이란 제목으로 EOS블록체인의 DPoS 합의 매커니즘을 폭격하는 글을 올렸다.

이에 EOS블록체인의 창시자 댄 라리머 또한 《암호경제학 거버넌스의 한계》란 제목으로 반박글을 올렸다.

필자는 비탈릭 부테린과 댄 라리머의 브로맨스와 키보드 배틀을 지켜본 지 몇년은 된다. 한때 BitShares 도 마켓캡 4위 암호화폐였고 라이트코인 잡기 바로직전이었던 리즈시절이 있었으며, 이더리움도 화이트 페이퍼 한장일 뿐일 때도 있었다. 댄과 댄의 아버지가 《비토크인과 로봇 3원칙》이란 암호화폐 역사의 획기적인 글을 발표해 DAC(“DAO”의 오리지널 이름) 개념을 제출한 얼마 뒤, 비탈릭 부테린은 당시 여전히 주필을 맡고 있던 Bitcoin Magazine 에서 《DAC 부트스트래핑하기》 란 시리즈 글로 사이좋게  받아쳤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DAO (“The DAO” 따위가 아닌), DAC, DApp 이론들의 시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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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사람은 컨퍼런스 같은데서도 자주 마주쳐 의견교환을 자주 하는 그런 사이였다.

비탈릭 또한 DPoS를 비평해온지 오래 됐고, 댄도 비탈릭의 이더리움 스케일링 솔루션을 비평해온지 오래다.

두사람 모두 자산 1조원 이상의 부자가 이미 됐는데 여전히 스타트업 창업자처럼 열심히 일한다. 댄은 맨날 열심히 코딩하고 기술 팀 관리하느라 바쁘다 (키보드배틀도 틈틈히 하고) (연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살도 많이 쪘다). 비탈릭은 젊은 나이에 부자가 됐는데 여전히 한국에 강연하러 올 때도 이코노미 클래스 타고 온다고 하더라. 둘 모두 부자가 되었지만, 이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은 이제 금방 시작한 것만 같다.

암호경제학에 대해서만큼은 둘의 의견이 좀처럼 좁아질 수 없을 것 같다. 비탈릭은 케인즈경제학파 신도이고 댄은 오스트리아 경제학파의 신도이다. 케인즈학파도 많이 봤고 오스트리아 학파도 많이 봤는데, 이 두 세상의 사람들은 마치 평행우주에 사는 것처럼 의견차를 좁힐 수 없는 것 같더라.

필자는 비탁릭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댄의 팬이다. 그리고 연관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스트리아 경제학파의 신도다. 필자는 이더리움 프로젝트라는 실험도 후원하고 있지만 EOS란 프로젝트에 더욱 많은 지분을 할애하고 있다. 두 프로젝트 모두 문샷(Moonshot) 프로젝트이고 실패해야 정상이다(우리 스스로도 종종 하이프에 취해버리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 성공하면 기적인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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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정보 중개업체와 소개팅 중개앱의 존재는 개인대 개인 자유 연애와 자유 결혼의 실패를 방증한다

유시민이 JTBC 토론에서 결어로 삼은 현실적인 정책 대안은 다음 세 가지다.

단기: 온라인 도박 규제에 준하는 규제.
중기: “중개소”(=거래소) 폐쇄. 중개소의 탄생은 비트코인의 실패를 방증한다.
장기: P2P 거래를 어떻게 (규제/규율)할지는 장기에 걸쳐 논의하자.

이 논리는

결혼정보 중개업체와 소개팅 중개앱의 존재는 개인대 개인 자유 연애와 자유 결혼의 실패를 방증한다.

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 없다.

Wikipedia 에 도네이션 할 때 제3의 신뢰기관이 필요하지 않고 검열받지 않을 수 있다고 했지,

암호화폐를 사기 위해 해당 코인 소유자를 알선 받기 위해 중앙화된 기관을 사용하면 안된다고 한게 아니다.

요즘 탈중앙화 거래소들도 날마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암호화폐는 화폐인가 주식인가

대한민국 내 암호화폐 에반젤리스트 중 두분이 가장 체계적인 개념으로 영향력 있게 암호화폐 이상을 전파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진화와 표철민. 두분 모두 필자가 존경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두분의 관점은 상이하다.

누구의 말이 맞나?

정말 요즘 암호화폐 지지자들 중에서도 암호화폐가 화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이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아니, 암호화폐가 “화폐”가 아니라면 왜 “화폐”란 이름을 붙이고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날뛰는걸까?

이 글은 그 진실을 명쾌하게 까밝히고자 한다. 긴 글을 싫어해, 최대한 짧게 적겠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현자들의 어깨에 서면, 진실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암호화폐 1.0 시대

최초의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은 화폐주권을 도전하기 위해 탈중앙화 대안 화폐를 목적으로 만들어진게 분명하다.

비트코인의 탄생 역사에 대해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을 만든 원인이 기존의 금융질서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속하던 사이퍼펑크(Cypherpunk) 커뮤니티의 역사다. 사이퍼펑크 운동은 암호학의 발전과 함께 탄생했다. 이 조직은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정부 같은 힘있는 거대 조직들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었다. 어느 시대든 자유를 열망하는 사람은 늘 있었고 빅 브라더들에 대해 경계를 놓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사이퍼펑크 커뮤니티는 개인의 결제 기록이 최고의 프라이버시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돈의 사용이 감시와 검열 받는것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로 여겼다.

(거의) 주류 경제학에서도 화폐주권을 도전해야 한다는 주장은 꾸준히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오스트리아 경제학파 하이에크다.

1976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화폐의 탈(脫)국가화’라는 짧은 글을 썼다. 정치적인 이유로 중앙은행이 휘둘릴 것을 우려한 그는 시장에서 누구나 화폐를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행 가능한 아이디어라기보다는 그저 이상론에 불과했던 그 주장은 30여 년 만에 가상화폐의 형태로 실현됐다.

출처: ‘탈국가의 꿈’ 에 도전하는 가상화폐

비트코인이 초기에 인기를 모은 것도 모두 이런 화폐주권에 대한 도전에 있다. 배부르고 등따신 누군가에게는 월가점령 운동이 이해가 안되는 그저 하나의 요원한 “뉴스”일 수 있다. 하지만 지구상 어딘가에서는 기존 화폐질서의 피해자가 있었고, 그것을 깨달은 사람이 있었으며, 그것에 반기를 드는 자가 있었다. 인류역사상의 모든 위대한 혁명이 모두 그렇게 시작했듯이.

대표적인게 키프로스 사태다. 그리고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일어난 베네수엘라 등 국가다.

그러다 2013년 비트코인이 화폐로 인정받는 사건이 벌어졌다. 키프로스의 금융 위기다.

비트코인은 2009년 처음 등장하고 3년이 지나서야 가치가 오르기 시작했다.

키프로스 은행은 그리스에 투자를 해왔는데, 그리스가 금유위기에 빠지자 45억유로를 손해보게 됐다. 이때문에 키프로스의 경제는 휘청했다. 키프로스 정부는 유럽연합(EU)에 구제금융을 신청했고, EU는 구제금융 조건으로 예금에 세금을 물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키프로스 은행에 돈을 예금한 사람들이 자금 피난처를 찾았다. 그 중 한 곳이 비트코인이다.

출처: 비트코인, 1만원에서 100만원 되기까지

암호화폐에 섣불리 “폰지스킴”이란 모자를 씌우고 스스로에게 속편한 결론을 선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사람들을 바보들이라 생각한다. 화폐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 투자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더러 묻지마 투자를 하는 대중이 확실히 많이 늘었고, 첨부터 “폰지스킴인줄 알면서” 돈벌기 위해 단타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다. 하지만 진정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화폐의 역사와 화폐의 본질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공부하고 누구보다 많이 고민하고 투자했을 것이다. 발로 투표하기보다, 돈으로 투표하기가, 훨씬 많은 고민이 필요한 일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런 고민이 개인을 성숙시키는 일이 아니었을까? 자유시장에 대한 추호의 믿음이 있다면 말이다.

E-gold, 닉 자보, 등 이 위대한 운동에서 혁혁했던 이름들을 담지 못한건 용서해주길 바라며, 이상 암호화폐 1.0 시대의 굵직한 흐름은 다 짚었길 바란다.

암호화폐 2.0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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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랑 블록체인 기술은 별개다?

장안의 화제다. 두가지 관점이 팽팽하게 맞선다.

한쪽에서는 “암호화폐는 바다이야기. 암호화폐랑 블록체인 기술 양성은 달라” 라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블록체인기술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이 될 것. 암호화폐와 떼어놓을 수 없어. 암호화폐 막으면 안돼.” 라고 주장한다.

누구의 말이 맞나?

두가지 주장 다 맞지 않다고 본다. 같이 살펴보도록 하자.

흔히들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라면 (퍼블릭) 블록체인은 “가치의 바다” 라고 말한다.
또는 비슷한 표현으로 “(퍼블릭) 블록체인은 가치의 인터넷” 이라고 말한다.

“퍼블릭” 이란 수식어를 매번 달기가 너무 번거로우니 이 글의 남은 부분에서 특별한 설명이 없으면 “블록체인” 이란 표현이 퍼블릭 블록체인을 가리키는거다.

나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의 가치를 높게 사지 않는다. 아무리 위대한 기술일지언정 나 혼자 쓰거나, 또는 나와 밥, 앨리스 총 3명이서 쓰는 어떤 물건이라면, 아무리 위대할래야 위대할 수 없지 않는가?

아래와 같은 대조과계를 살펴보자.

블록체인 <—-> 랜선, 광케이블, 또는 TCP/IP
프라이빗 블록체인 <—-> 인트라넷
퍼블릭 블록체인 <—-> 인터넷 (The Internet)

(더 그뤠잇 킹 갓) 인터넷이 세상을 바꿨다고들 얘기한다. 인터넷이 등장 초기에 얼마나 많은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는지는 잊혀졌다.

사람들이 “블록체인” 이 위대하다고 할 때 얘기하는건 사실상 블록체인 그 위의 무엇이 위대하다고 얘기하는거다. 아무도 랜선이나 광케이블을 두고 위대하다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것들이 위대함에 기여하기는 하지만)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정확하게 “블록체인 위의 그 무엇” 이 위대한거라고 표현하지 않고 블록체인이 위대하다고 표현하는가? 두가지 가능한 원인이 있다: 겸손해서, 혹은 아직 알지 못해서.

필경, 랜선은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도 있다. TCP/IP 는 엔지니어 아니면 모른다. “지구를 둘러싼 거대한 정보의 그물” 이라는 물건은 우리가 맨날 접하지만 맨날 접해서 모른다. 물고기가 물의 존재를 망각하듯이. 아주 가끔 케빈 켈리(Kevin Kelly) 의 저술을 손에 들었을 때에만 그 거대 그물의 존재를 발견하게 된다. 또한 “정보의 바다” 라는 표현도 그렇다. 너무 정확한 표현이지만 표현할 때마다 낯설다. “아 그게 그런거였지”.

자 그렇다면 “블록체인”은 그냥 일종의 “자료구조”일뿐 그 자체로는 세상을 바꿀 힘이 없을 것이다. 자료구조의 그냥 또 한가지(just another)가 무슨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단 말인가?

그 세상을 바꾼다는 잘난 “블록체인 위의 그것” 은 도대체 무엇인가?

가장 어려문 질문 맞다. 모든 이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문제 맞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이 이미 위에 나와있는 것처럼 “네트워크”라고 생각한다.

페이스북의 가치가 (소프트웨어) 소스코드에 있는가? 아니다 네트워크다.
페이스북의 모든 소스코드를 당신 손에 쥐어줘도 당신은 페이스북을 넘어서서 SNS 1위 강자로 거듭날 수 없다.

“블록체인 기술은 이미 공개된 기술이고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암호화폐랑은 다른거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페이스북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거다.

윙클보스 형제가 뭐라 표현했나? “비트코인은 가장 위대한 소셜 네트워크다.” 인터뷰를 위해 끼워맞춘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윙클보스 형제” 라서 아이덴티티에 맞게 표현했다는 점도 물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표현의 80%는 진심이라는 걸 안다.

인류 최초의 문자기록은 소설도 아니고 심지어 시도 아니다. 심지어 사랑 노래도 아니고 신을 찬송하는 종교내용도 아니다. 인류 최초의 문자기록은 “엑셀문서”다. 인류 역사상 원장은 그 자체로 권력의 기반이었다. 분산원장이 세상을 바꿀꺼라는 말에는 그 어떤 과장도 들어있지 않다.

더군다나 분산원장을 넘어 인류가 그 위에 스마트 계약을 돌리고 신뢰가 보장되는 원장을 넘어서 프로그램을 돌릴 것이니 말이다.

신뢰받지 않는 프로그램, 뭐 시장이 있었다. 신뢰받는 범세계적 컴퓨팅이 존재하기 전에는.

그래서 블록체인 기술은 중요하지 않다?

그건 아니다. 위대한 물건의 프로토콜 전쟁을 하는건 “표준전쟁” 과 마찬가지로 엄청 중요한 일 맞다. 다만 본 글에서는 네트워크의 가치를 설파하는데 치중할 뿐이다.

페이스북이 DDT 만든 회사보다 위대한가? 페이스북이 인류 최초로 피임수단을 발명한 회사보다 위대한가? 잘 모르겠다. 시장은 네트워크의 손을 훨씬 많이 들어준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블록체인 기술을 대표로 하는 4차 산업혁명 기술, 심지어 인터넷 기술을 대표로 하는 3차 산업혁명 기술마저도,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만들까 심한 우려와 초조를 갖고 있지만 말이다. 자세한 내용은 영드, 인지 미드인지 모를 <블랙 미러>를 참고하라. 케빈 켈리의 <기술의 충격>도 참고할만하다.

국부유출?

우려하는 마음은 이해한다. 그분들은 암호화폐가 1일 뒤든, 1주 뒤든, 1달 뒤든, 1년 뒤든, 언제든 0으로 폭락할게 너무 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정말 세계경제포럼 예측대로 근미래에 세계 GDP의 10%가 퍼블릭 블록체인상에 저장되고 작동하게 될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면 어떤게 진정 국부유출인지 뿌리부터 재검토가 필요하겠다.

다시 돌아와서, “블록체인 위의 그것” 이란 도대체 뭘까?

영문에서는 대문자 “Bitcoin” 과 소문자 “bitcoin” 이란 단어가 모두 존재한다. 전자는 비트코인 (더) 네트워크를 가리키고, 후자는 전자의 토큰을 가리킨다.

DAC파 주장에 따르면 전자는 기업이고 후자는 주식이다.

뭔 미친 소리냐고 할 수도 있는데, 아래 글을 보면 해석이 나온다:

AI들의 기업

(끝)

There Never Was a Real Tulip Fever

A new movie sets its doomed entrepreneurs amidst 17th-century “tulipmania”—but historians of the phenomenon have their own bubble to bu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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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tulips came to the Netherlands, all the world went mad. A sailor who mistook a rare tulip bulb for an onion and ate it with his herring sandwich was charged with a felony and thrown in prison. A bulb named Semper Augustus, notable for its flame-like white and red petals, sold for more than the cost of a mansion in a fashionable Amsterdam neighborhood, complete with coach and garden. As the tulip market grew, speculation exploded, with traders offering exorbitant prices for bulbs that had yet to flower. And then, as any financial bubble will do, the tulip market imploded, sending traders of all incomes into ruin.

For decades, economists have pointed to 17th-century tulipmania as a warning about the perils of the free market. Writers and historians have reveled in the absurdity of the event. The incident even provides the backdrop for the new film Tulip Fever, based on a novel of the same name by Deborah Moggach.

The only problem: none of these stories are true.

What really happened and how did the story of Dutch tulip speculation get so distorted? Anne Goldgar discovered the historical reality when she dug into the archives to research her book, Tulipmania: Money, Honor, and Knowledge in the Dutch Golden Age.

“I always joke that the book should be called ‘Tulipmania: More Boring Than You Thought,’” says Goldgar, a professor of early modern history at King’s College London. “People are so interested in this incident because they think they can draw lessons from it. I don’t think that’s necessarily the case.”

But before you even attempt to apply what happened in the Netherlands to more recent bubbles—the South Sea Bubble in 1700s England, the 19th-century railway bubble, the dot-com bubble and bitcoin are just a few comparisons Goldgar has seen—you have to understand Dutch society at the turn of the 17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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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의 시각으로 바라본 블록체인 기술

KK 는 케빈 켈리(Kevin Kelly)의 이니셜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새 착상은 불확실성의 더미다.

창안자가 자신의 참신한 착상이 세상을 바꾼다거나 전쟁을 종식시킨다거나 가난을 없애거나 대중을 즐겁게 할 것이라고 얼마나 확신하든 간에, 사실 그것이 어찌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 착상의 단기적인 역할조차 불명료하다. 역사는 어떤 기술의 발명자 자신이 기대했던 것이 빗나간 사례로 가득하다.

토머스 에디슨은 자신의 축음기가 죽어 가는 사람의 마지막 유언을 기록하는 데 주로 쓰일 것이라고 믿었다. 처음에 라디오에 자금을 댄 사람들은 그것이 시골 농민들에게 설교를 전파하는 데 이상적인 장치라고 믿고 그렇게 했다. 비아그라는 원래 심장약으로서 임상 시험을 했다. 인터넷은 원래 재난에 대비한 예비 통신망으로 창안된 것이다. 위대한 착상 가운데 그것이 이윽고 이룬 위대함을 향해 처음부터 나아간 것은 거의 없다. 즉 어떤 기술이 실제로 ‘있기’ 전에 그것이 어떤 해를 미칠지 예측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거의 예외 없이 기술은 자신이 자라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를 알지 못한다. 한 발명이 테크늄에서 자신의 역할을 세부적으로 다듬으려면 초기 채택자들과 많이 만나고 다른 발명들과 많이 충돌해야 한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젊은 기술도 나중에 더 나은 생계 수단을 마련하기에 앞서 첫 직업에서 실패를 경험하곤 한다.

처음부터 원래 역할을 그대로 유지하는 기술은 드물다. 발명자가 기대한(그리고 수지가 맞는!) 용도에 구애받다가 그 예상이 잘못되었음이 금방 드러나고, 일련의 대안(그리고 수지가 덜 맞는) 용도로 쓰인다고 선전되다가, 이윽고 현실이 그 기술을 거의 예상하지 않았던 사소한 용도로 이끄는 새 발명이 훨씬 더 많다. 때로 그 사소한 용도는 아주 파괴적인 사례로 활짝 꽃을 피워서 표준이 되기도 한다. 그런 성공이 이루어지면, 앞서 있던 실패들은 잊힌다.

에디슨은 최초로 축음기를 만든 지 1년 뒤까지도 자신의 발명품이 어디에 쓰일 수 있을지 고심하고 있었다. 그 발명품을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지만 , 온갖 방향으로 별별 생각을 다했다. 그는 자신의 착상이 맹인을 위한 구술 기계나 오디오북, 혹은 말하는 시계, 뮤직박스, 발음 훈련 장치, 유언 기록 장치, 자동 응답 기계를 탄생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축음기의 가능한 용도를 죽 나열한 목록 맨 끝에 그는 거의 나중에 떠올린 듯이, 녹음된 음악을 연주한다는 착상을 덧붙였다.

레이저 장치는 미사일을 쏘아 떨어뜨릴 정도로 강력한 것까지 개발되었지만, 주로 바코드나 영화 DVD를 읽는 용도로 수십억 개씩 만들어진다. 트랜지스터는 방만 한 컴퓨터의 진공관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오늘날 주로 카메라, 전화기, 통신 장비의 조그마한 두뇌에 집어넣기 위해 제조되고 있다. 휴대전화는(……) 음, 휴대전화로 출발했다. 그리고 처음 수십년 동안은 그러했다. 하지만 차츰 성숙해져 휴대전화 기술은 태블릿, 전자책, 비디오 플레이어를 위한 이동 컴퓨터 플랫폼이 되고 있다. 기술에서는 직업을 바꾸는 것이 예외가 아니라 표준이다.

이미 세계에 존재하는 착상과 기술의 수가 많을수록, 우리가 새것을 도입할 때 나타날 가능한 조합과 이차 반응의 수도 더 많아질 것이다. 해마다 수백만 가지의 새로운 착상이 도입되는 테크늄에서 결과를 예측해 수학적으로 처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새것이 기존 일을 더 잘하게 해 준다고 상상하는 본능적인 성향이 있으며, 그 때문에 예측은 더 어려워진다. 그것이 바로 최초의 자동차가 ‘말 없는 마차’라고 불린 이유다. 최초의 영화는 그저 연극을 찍은 다큐멘터리 필름이었다. 새로운 것을 성취하고, 새로운 전망을 드러내며,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새로운 매체로서의 사진술의 온전한 잠재력을 깨달은 것은 시간이 좀 흐른 뒤였다. 아직도 똑같은 맹점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는 오늘날의 전자책을 보편적인 공용 도서관을 자아내는 근원적인 힘을 지닌 강력한 텍스트의 실이 아니라 전자종이에 뜨는 일반 책이라고 여긴다. 우리는 유전자 검사가 혈액 검사와 비슷한 것, 즉 인생에서 변하지 않는 어떤 값을 얻기 위해 한 차례 하는 무언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유전자가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변화하고 환경과 상호작용함에 따리 시시때때로 유전자 서열 분석을 하는 이 시점에 말이다.

가장 참신한 것들은 예측 가능성이 아주 낮다. 화약을 발명한 중국인은 총의 등장을 내다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전자기의 발견자인 윌리엄 스터전(William Sturgeon)은 전기 모터를 예측하지 못했다. 필로 판스워스(Philo Farnsworth)는 자신의 음극관에서 텔레비전 문화가 출현하리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지난 세기가 시작될 때의 광고를 보면, 최신 전화기가 초청장, 주문서, 안전하게 도착했다는 확인 같은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망설이는 소비자에게 판매하려 애썼음을 알 수 있다. 광고주들은 전화기를 마치 더 편리한 전신인 양 판매했다. 대화를 주고받는 장치라고 주장한 광고주는 아무도 없었다.

넓은 간선도로, 차에 탄 채 주문을 하는 식당, 안전띠, 길 안내 장치, 연비를 향상시키는 디지털 계기판의 집적체인 오늘날의 자동차는 100년 전 포드 T 모델과는 다른 기술이다. 그리고 그 차이의 대부분은 영속하는 내연기관보다는 주로 이차 혁신에서 비롯된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아스피린은 작년의 아스피린이 아니다. 몸에 든 다른 약물들, 수명 변화와 알약을 삼키는 습관(하루에 한 알씩!), 싼 값 등의 맥락을 놓고 볼 때, 그것은 버드나무 껍질의 에센스에서 얻은 전통 약물이나 100년 전 바이엘이 내놓은 최초의 합성 약물과 다른 기술이다. 비록 다 똑같은 화학물질인 아세틸살리실산이지만. 기술은 번창함에 따라 변천한다. 사용됨에 따라 개조된다. 보급됨에 따라 이차, 삼차 결과를 낳는다. 그리고 거의 모든 곳에 존재하게 될 때 거의 언제나 전혀 예측하지 않은 효과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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