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랑 블록체인 기술은 별개다?

장안의 화제다. 두가지 관점이 팽팽하게 맞선다.

한쪽에서는 “암호화폐는 바다이야기. 암호화폐랑 블록체인 기술 양성은 달라” 라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블록체인기술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이 될 것. 암호화폐와 떼어놓을 수 없어. 암호화폐 막으면 안돼.” 라고 주장한다.

누구의 말이 맞나?

두가지 주장 다 맞지 않다고 본다. 같이 살펴보도록 하자.

흔히들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라면 (퍼블릭) 블록체인은 “가치의 바다” 라고 말한다.
또는 비슷한 표현으로 “(퍼블릭) 블록체인은 가치의 인터넷” 이라고 말한다.

“퍼블릭” 이란 수식어를 매번 달기가 너무 번거로우니 이 글의 남은 부분에서 특별한 설명이 없으면 “블록체인” 이란 표현이 퍼블릭 블록체인을 가리키는거다.

나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의 가치를 높게 사지 않는다. 아무리 위대한 기술일지언정 나 혼자 쓰거나, 또는 나와 밥, 앨리스 총 3명이서 쓰는 어떤 물건이라면, 아무리 위대할래야 위대할 수 없지 않는가?

아래와 같은 대조과계를 살펴보자.

블록체인 <—-> 랜선, 광케이블, 또는 TCP/IP
프라이빗 블록체인 <—-> 인트라넷
퍼블릭 블록체인 <—-> 인터넷 (The Internet)

(더 그뤠잇 킹 갓) 인터넷이 세상을 바꿨다고들 얘기한다. 인터넷이 등장 초기에 얼마나 많은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는지는 잊혀졌다.

사람들이 “블록체인” 이 위대하다고 할 때 얘기하는건 사실상 블록체인 그 위의 무엇이 위대하다고 얘기하는거다. 아무도 랜선이나 광케이블을 두고 위대하다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것들이 위대함에 기여하기는 하지만)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정확하게 “블록체인 위의 그 무엇” 이 위대한거라고 표현하지 않고 블록체인이 위대하다고 표현하는가? 두가지 가능한 원인이 있다: 겸손해서, 혹은 아직 알지 못해서.

필경, 랜선은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도 있다. TCP/IP 는 엔지니어 아니면 모른다. “지구를 둘러싼 거대한 정보의 그물” 이라는 물건은 우리가 맨날 접하지만 맨날 접해서 모른다. 물고기가 물의 존재를 망각하듯이. 아주 가끔 케빈 켈리(Kevin Kelly) 의 저술을 손에 들었을 때에만 그 거대 그물의 존재를 발견하게 된다. 또한 “정보의 바다” 라는 표현도 그렇다. 너무 정확한 표현이지만 표현할 때마다 낯설다. “아 그게 그런거였지”.

자 그렇다면 “블록체인”은 그냥 일종의 “자료구조”일뿐 그 자체로는 세상을 바꿀 힘이 없을 것이다. 자료구조의 그냥 또 한가지(just another)가 무슨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단 말인가?

그 세상을 바꾼다는 잘난 “블록체인 위의 그것” 은 도대체 무엇인가?

가장 어려문 질문 맞다. 모든 이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문제 맞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이 이미 위에 나와있는 것처럼 “네트워크”라고 생각한다.

페이스북의 가치가 (소프트웨어) 소스코드에 있는가? 아니다 네트워크다.
페이스북의 모든 소스코드를 당신 손에 쥐어줘도 당신은 페이스북을 넘어서서 SNS 1위 강자로 거듭날 수 없다.

“블록체인 기술은 이미 공개된 기술이고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암호화폐랑은 다른거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페이스북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거다.

윙클보스 형제가 뭐라 표현했나? “비트코인은 가장 위대한 소셜 네트워크다.” 인터뷰를 위해 끼워맞춘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윙클보스 형제” 라서 아이덴티티에 맞게 표현했다는 점도 물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표현의 80%는 진심이라는 걸 안다.

인류 최초의 문자기록은 소설도 아니고 심지어 시도 아니다. 심지어 사랑 노래도 아니고 신을 찬송하는 종교내용도 아니다. 인류 최초의 문자기록은 “엑셀문서”다. 인류 역사상 원장은 그 자체로 권력의 기반이었다. 분산원장이 세상을 바꿀꺼라는 말에는 그 어떤 과장도 들어있지 않다.

더군다나 분산원장을 넘어 인류가 그 위에 스마트 계약을 돌리고 신뢰가 보장되는 원장을 넘어서 프로그램을 돌릴 것이니 말이다.

신뢰받지 않는 프로그램, 뭐 시장이 있었다. 신뢰받는 범세계적 컴퓨팅이 존재하기 전에는.

그래서 블록체인 기술은 중요하지 않다?

그건 아니다. 위대한 물건의 프로토콜 전쟁을 하는건 “표준전쟁” 과 마찬가지로 엄청 중요한 일 맞다. 다만 본 글에서는 네트워크의 가치를 설파하는데 치중할 뿐이다.

페이스북이 DDT 만든 회사보다 위대한가? 페이스북이 인류 최초로 피임수단을 발명한 회사보다 위대한가? 잘 모르겠다. 시장은 네트워크의 손을 훨씬 많이 들어준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블록체인 기술을 대표로 하는 4차 산업혁명 기술, 심지어 인터넷 기술을 대표로 하는 3차 산업혁명 기술마저도,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만들까 심한 우려와 초조를 갖고 있지만 말이다. 자세한 내용은 영드, 인지 미드인지 모를 <블랙 미러>를 참고하라. 케빈 켈리의 <기술의 충격>도 참고할만하다.

국부유출?

우려하는 마음은 이해한다. 그분들은 암호화폐가 1일 뒤든, 1주 뒤든, 1달 뒤든, 1년 뒤든, 언제든 0으로 폭락할게 너무 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정말 세계경제포럼 예측대로 근미래에 세계 GDP의 10%가 퍼블릭 블록체인상에 저장되고 작동하게 될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면 어떤게 진정 국부유출인지 뿌리부터 재검토가 필요하겠다.

다시 돌아와서, “블록체인 위의 그것” 이란 도대체 뭘까?

영문에서는 대문자 “Bitcoin” 과 소문자 “bitcoin” 이란 단어가 모두 존재한다. 전자는 비트코인 (더) 네트워크를 가리키고, 후자는 전자의 토큰을 가리킨다.

DAC파 주장에 따르면 전자는 기업이고 후자는 주식이다.

뭔 미친 소리냐고 할 수도 있는데, 아래 글을 보면 해석이 나온다:

AI들의 기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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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의 신흥 종교: 데이터교

실리콘 밸리에서는 이른바 “데이터교”라는 새로운 종교가 광풍처럼 몰아친다고 한다.

데이터교는 우주가 데이터의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떤 현상이나 실체의 가치는 데이터 처리에 기여하는 바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다. 이색적인 비주류 개념 같다는 인상을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이 개념은 이미 과학계의 대부분을 정복했다고 한다.

이 종교에 따르면 경제란 욕망과 능력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해 그 데이터를 결정으로 전환하는 메커니즘이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자유시장 자본주의와 국가가 통제하는 공산주의는 서로 경쟁하는 이념, 윤리적 신조, 정치제도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이 둘은 경쟁하는 데이터 처리 시스템이다. 자본주의는 데이터를 나누어 처리하는 반면, 공산주의는 중앙에서 모두 처리한다. 공산주의가 20세기에 더욱 일찍 산업화의 성공을 이루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시장이 이길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단기간(이를테면 빠른 산업화, 또는 빠르게 구세계를 타파하는데)에는 더욱 효율적이지 모르지만, 장기간에서는 자유시장이 정보처리에 더욱 효율적이고 환경변화에 덜 취약하기 때문이다. 즉 robustness, fault-tolerance 가 더 좋기 때문이다.

실제로 데이터교도들은 인간의 지식과 지혜보다는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더 신뢰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빅데이터 미래세계를 구축하려 한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증권거래소는 인간이 창조한 가장 빠르고 가장 효율적인 데이터 처리 시스템이다. 성공적인 과학 실험, 일본의 정치 스캔들, 아이슬란드의 화산 폭발은 물론, 태양 표면의 불규칙한 활동조차 주가에 영향을 미친다. <뉴욕타임스>에 대서특필된 사건들이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데는 단 15분간의 거래면 충분하다고 추산된다.

자유시장에서는 한 프로세서가 잘못된 결정을 내리면 다른 프로세서들이 잽싸게 그 실수를 활용한다.

자본주의가 냉전에서 승리한 것은, 적어도 기술 변화가 가속화되는 시대에는 중앙 집중식 데이터 처리보다 분산식 데이터 처리가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독재와 민주주의도 데이터 처리로 해석된다. 독재는 중앙 집중식 처리 방법이고 민주주의는 분산식 처리이다.

오늘날 인터넷이 사람들의 주권을 약화시키고 국경을 무시하고 사생활을 없애고 전 지구적 안보를 엄청나게 위협하는 자유로운 무법지대로 되었다. 정부라는 거북이는 기술이라는 토끼를 따라잡지 못한다.

사람들은 권력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있지만 그곳이 어딘지는 모른다. 영국 유권자들은 권력이 유럽연합으로 이동했을 거라고 생각하고 브렉시트에 투표하지만 슬픈 진실은 권력이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21세기 초에 정치는 장대한 비전을 잃었다. 정부는 나라를 운영할 뿐 이끌지 못한다. 교사들의 급여가 제때 지급되고 하수도가 넘치지 않게 할 뿐, 20년 뒤 나라가 어디로 갈지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이 없다. 20세기의 거대한 정치적 비전들이 우리를 아우슈비츠, 히로시마, 대약진 운동으로 이끌었음을 생각하면, 근시안적인 관료들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른다. 이런 무위와 무지는 심지어 심오한 지혜로 재해석되기까지 한다.

성공한 다른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데이터교 역시 포교를 한다. 이런 계명들에는 “가능한 많은 매체와 연결해 가능한 많은 정보를 생산하고 소비함으로써 데이터 흐름을 극대화하라”, “연결되기를 원치 않는 이단까지 포함해 모든 것을 시스템에 연결하라.” (여기서 모든 것이란 인간만을 말하는게 아니라 말 그대로 “모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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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들의 기업

이런 기업이 있다고 상상해보자.

회사 오너 즉 주주들은 모두 인간이다. 하지만 임원들은  전부 AI이다. 직원들은 AI도 있고 인간도 있다.

왜 임원들이 AI냐고? 거야 모르지. AI가 싸서 일 수도 있고 말 잘 들어서 일 수도 있고 24시간 일할 수 있어서 일 수도 있고, 어쨌든 오너들의 마음이지. 오너들이 그러겠다는데.

그렇다면 오너들은 왜 AI가 아니냐고? 인간은 돈이 있어서 투자할 수 있지만 AI들은 돈이 없어서 투자할 수 없기 때문이지.

이 AI들은 당연히 “로봇공학의 삼원칙”을 최고의 계명으로 설계되었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주주들을 위해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로 설계되었다.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고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하다. 이 두가지를 위해서는 비즈니스 전략이 필요하다. 즉 사업기획서가 필요하다. 이 사업기획서는 임원 AI들이 만들어질 때 DNA에 깊숙이 각인된다.

사업기획서가 있다고 자동으로 이윤이 창출되지는 않는다. 인간이나 AI(로봇 포함)을 고용하여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가치를 창출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이윤을 획득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잠깐, AI들은 돈이 없는데 어떻게 직원을 고용하는가? 어떤 인간이 돈 안받고 이 임원들에게 일을 해줄 것인가?

이 AI들은 직원들에게 회사 주식을 월급으로 지불한다. 돈이 없기에 회사 주식을 화폐로 사용하는 것이다.

잠깐, 이런 주식이 가치가 있기 위해서는 회사가 가치 있어야 하고, 회사가 가치 있기 위해서는 직원을 고용할 수 있어야 한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무한고리에 빠진다.

즉 이 기업은 Bootstrapping이 필요하다.

좀 딴소린데, 자연계에서 닭이 먼저 생겼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알이 먼저 생겼다고 생각하는가?

신은 대자연은 이 문제를 훌륭하게 해답했다. 닭과 알을 동시에 점진적으로 창조하면 된다.

대자연의 마술은 그렇다 치고, 여기에서 우리의 AI 기업을 어떻게 Bootstrap할지나 연구해보자.

처음에 회사 주식의 가치는 0이었다. 그러다가 그 어떤 사람이 단순 투기의 목적에서인지 아님 술취해서인지, 아님 이 AI기업의 창창한 미래가 내다보여서인지, 어쨌든 이 AI기업의 주식을 1.5주 사기로 결정한다. 기존 주주중 누군가 1.5주 팔아주는데 동의했다. 이렇게 첫번째 거래가 성사되고 가격이 형성된다. 가격이 미미하더라도 말이다.

0에서 0.01로의 도약은 기적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함을 뜻하고 무한대 뱃수의 상승을 의미한다. 마치 40억년전 원시 지구 심해의 열수구에서 RNA들의 조합으로 첫번째 생명이 탄생할 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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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tlin언어 성공사례: Corda 블록체인(by R3)

Kotlin언어? 뭔 듣보잡? 성공사례가 있니?

찾아보니 있다.

corda_kotlin.png

CTO는 전 구글 시니어 엔지니어였다고 한다. CTO분이 얘기하신 Kotlin 선택 원인:

  1. 정적 타이핑 (그러고 보니 밀레니얼 세대 언어는 다 그런 것 같다)
  2. Java가 비즈니스 월드에서 중요해서. (하긴)
  3. 섹시해서 (구닥다리 Java랑 비교하니 그렇지)
  4. 배우기 쉬워서 그래서 구인이 쉬워서 (보통 Java구인을 하고 1~3일 트레이닝 시키면 코틀린 언어 코딩을 할 수 있다고 한다)
  5. IDE지원 잘되서
  6. 컴파일 속도가 빨라서 (Scala 저격하며)
  7. 문서화가 잘돼있어서
  8. 내가 할줄 알아서. 내가 좀 해봤는데 재밌어서

그러면서 하는 말이 Kotlin이 없었다면 Scala 썼을 것이라 한다.

마지막에 내린 결론이: 잘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Kotlin이 정말 반갑다. JVM팬으로서 항상 언어가 아쉬웠는데, Java는 구닥다리고, Scala는 너무 복잡하고* Groovy는 언어가 아쉽고, (Scala 와 Groovy공통점이 모두 창립자가 포기했다는 점..) Clojure는 대중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것 같고. 그런 점에서 Kotlin은 JVM에게 복음과도 같았다.

특히 실행 가능한 환경이  JVM / Javascript VM / Native 로 다양해서 플랫폼에 발목 잡히는 일이 없도록 했다는 점도 칭찬하고 싶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최근에야 터득한 점)

JVM, V8엔진, 네이티브 세가지 모두 점점 중요해지는 플랫폼인 것 같다. 아 WASM(Web Assembly)까지 지원하면 더욱 좋겠지만. 이게 미래가 될 수도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는게 컴파일러 플랫폼이 LLVM이어서 WASM이 GC만 지원하면 WASM으로 컴파일 하는 것도 식은 죽 먹기일 거라는 점.

최근 홍민희님의 PyConKr 2017 발표 <파이썬과 다이아스포라>를 보고, 최근에 읽은 <사피엔스>와 결부해서 느낀 점이: 성공한 언어들은 모두 대중성을 키 피처로 치밀하게 기획된 것 같다는 점이다. 민족의 용광로처럼 말이다. (적어도 대량 전파됨을 성공의 척도로 본다면 그렇다)

심지어 Rust도 너무 결백증스러운 면이 있어서 대중성이 의심스럽다.

다행히 Kotlin은 대중성을 키 피처로 설계된 듯하다. 그것의 일환으로 Java월드 레거시에 대한 포용성도 잘 설계된 것 같다.

미래가 지켜볼만하지 않은가!

* 참고로 R3 Corda의 경쟁상대인 IBM hyperledger fabric 은 Go언어로 만들었다.

부록

* TIOBE 프로그래밍 언어 유행도 인덱스에 따르면 Scala는 D언어나 COBOL언어보다 인기가 적다: https://www.tiobe.com/tiobe-inde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