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는 화폐인가 주식인가

대한민국 내 암호화폐 에반젤리스트 중 두분이 가장 체계적인 개념으로 영향력 있게 암호화폐 이상을 전파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김진화와 표철민. 두분 모두 필자가 존경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두분의 관점은 상이하다.

누구의 말이 맞나?

정말 요즘 암호화폐 지지자들 중에서도 암호화폐가 화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 이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아니, 암호화폐가 “화폐”가 아니라면 왜 “화폐”란 이름을 붙이고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날뛰는걸까?

이 글은 그 진실을 명쾌하게 까밝히고자 한다. 긴 글을 싫어해, 최대한 짧게 적겠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현자들의 어깨에 서면, 진실이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암호화폐 1.0 시대

최초의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은 화폐주권을 도전하기 위해 탈중앙화 대안 화폐를 목적으로 만들어진게 분명하다.

비트코인의 탄생 역사에 대해 조금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사토시 나카모토가 비트코인을 만든 원인이 기존의 금융질서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속하던 사이퍼펑크(Cypherpunk) 커뮤니티의 역사다. 사이퍼펑크 운동은 암호학의 발전과 함께 탄생했다. 이 조직은 개인의 자유와 프라이버시를 정부 같은 힘있는 거대 조직들로부터 보호하는 것이었다. 어느 시대든 자유를 열망하는 사람은 늘 있었고 빅 브라더들에 대해 경계를 놓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다. 사이퍼펑크 커뮤니티는 개인의 결제 기록이 최고의 프라이버시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돈의 사용이 감시와 검열 받는것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로 여겼다.

(거의) 주류 경제학에서도 화폐주권을 도전해야 한다는 주장은 꾸준히 있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오스트리아 경제학파 하이에크다.

1976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화폐의 탈(脫)국가화’라는 짧은 글을 썼다. 정치적인 이유로 중앙은행이 휘둘릴 것을 우려한 그는 시장에서 누구나 화폐를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행 가능한 아이디어라기보다는 그저 이상론에 불과했던 그 주장은 30여 년 만에 가상화폐의 형태로 실현됐다.

출처: ‘탈국가의 꿈’ 에 도전하는 가상화폐

비트코인이 초기에 인기를 모은 것도 모두 이런 화폐주권에 대한 도전에 있다. 배부르고 등따신 누군가에게는 월가점령 운동이 이해가 안되는 그저 하나의 요원한 “뉴스”일 수 있다. 하지만 지구상 어딘가에서는 기존 화폐질서의 피해자가 있었고, 그것을 깨달은 사람이 있었으며, 그것에 반기를 드는 자가 있었다. 인류역사상의 모든 위대한 혁명이 모두 그렇게 시작했듯이.

대표적인게 키프로스 사태다. 그리고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일어난 베네수엘라 등 국가다.

그러다 2013년 비트코인이 화폐로 인정받는 사건이 벌어졌다. 키프로스의 금융 위기다.

비트코인은 2009년 처음 등장하고 3년이 지나서야 가치가 오르기 시작했다.

키프로스 은행은 그리스에 투자를 해왔는데, 그리스가 금유위기에 빠지자 45억유로를 손해보게 됐다. 이때문에 키프로스의 경제는 휘청했다. 키프로스 정부는 유럽연합(EU)에 구제금융을 신청했고, EU는 구제금융 조건으로 예금에 세금을 물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키프로스 은행에 돈을 예금한 사람들이 자금 피난처를 찾았다. 그 중 한 곳이 비트코인이다.

출처: 비트코인, 1만원에서 100만원 되기까지

암호화폐에 섣불리 “폰지스킴”이란 모자를 씌우고 스스로에게 속편한 결론을 선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사람들을 바보들이라 생각한다. 화폐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런 투자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더러 묻지마 투자를 하는 대중이 확실히 많이 늘었고, 첨부터 “폰지스킴인줄 알면서” 돈벌기 위해 단타 들어가는 사람들도 많이 늘었다. 하지만 진정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화폐의 역사와 화폐의 본질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공부하고 누구보다 많이 고민하고 투자했을 것이다. 발로 투표하기보다, 돈으로 투표하기가, 훨씬 많은 고민이 필요한 일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런 고민이 개인을 성숙시키는 일이 아니었을까? 자유시장에 대한 추호의 믿음이 있다면 말이다.

E-gold, 닉 자보, 등 이 위대한 운동에서 혁혁했던 이름들을 담지 못한건 용서해주길 바라며, 이상 암호화폐 1.0 시대의 굵직한 흐름은 다 짚었길 바란다.

암호화폐 2.0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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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랑 블록체인 기술은 별개다?

장안의 화제다. 두가지 관점이 팽팽하게 맞선다.

한쪽에서는 “암호화폐는 바다이야기. 암호화폐랑 블록체인 기술 양성은 달라” 라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블록체인기술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이 될 것. 암호화폐와 떼어놓을 수 없어. 암호화폐 막으면 안돼.” 라고 주장한다.

누구의 말이 맞나?

두가지 주장 다 맞지 않다고 본다. 같이 살펴보도록 하자.

흔히들 인터넷이 “정보의 바다”라면 (퍼블릭) 블록체인은 “가치의 바다” 라고 말한다.
또는 비슷한 표현으로 “(퍼블릭) 블록체인은 가치의 인터넷” 이라고 말한다.

“퍼블릭” 이란 수식어를 매번 달기가 너무 번거로우니 이 글의 남은 부분에서 특별한 설명이 없으면 “블록체인” 이란 표현이 퍼블릭 블록체인을 가리키는거다.

나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의 가치를 높게 사지 않는다. 아무리 위대한 기술일지언정 나 혼자 쓰거나, 또는 나와 밥, 앨리스 총 3명이서 쓰는 어떤 물건이라면, 아무리 위대할래야 위대할 수 없지 않는가?

아래와 같은 대조과계를 살펴보자.

블록체인 <—-> 랜선, 광케이블, 또는 TCP/IP
프라이빗 블록체인 <—-> 인트라넷
퍼블릭 블록체인 <—-> 인터넷 (The Internet)

(더 그뤠잇 킹 갓) 인터넷이 세상을 바꿨다고들 얘기한다. 인터넷이 등장 초기에 얼마나 많은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는지는 잊혀졌다.

사람들이 “블록체인” 이 위대하다고 할 때 얘기하는건 사실상 블록체인 그 위의 무엇이 위대하다고 얘기하는거다. 아무도 랜선이나 광케이블을 두고 위대하다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물론 그것들이 위대함에 기여하기는 하지만)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정확하게 “블록체인 위의 그 무엇” 이 위대한거라고 표현하지 않고 블록체인이 위대하다고 표현하는가? 두가지 가능한 원인이 있다: 겸손해서, 혹은 아직 알지 못해서.

필경, 랜선은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도 있다. TCP/IP 는 엔지니어 아니면 모른다. “지구를 둘러싼 거대한 정보의 그물” 이라는 물건은 우리가 맨날 접하지만 맨날 접해서 모른다. 물고기가 물의 존재를 망각하듯이. 아주 가끔 케빈 켈리(Kevin Kelly) 의 저술을 손에 들었을 때에만 그 거대 그물의 존재를 발견하게 된다. 또한 “정보의 바다” 라는 표현도 그렇다. 너무 정확한 표현이지만 표현할 때마다 낯설다. “아 그게 그런거였지”.

자 그렇다면 “블록체인”은 그냥 일종의 “자료구조”일뿐 그 자체로는 세상을 바꿀 힘이 없을 것이다. 자료구조의 그냥 또 한가지(just another)가 무슨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단 말인가?

그 세상을 바꾼다는 잘난 “블록체인 위의 그것” 은 도대체 무엇인가?

가장 어려문 질문 맞다. 모든 이가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문제 맞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것이 이미 위에 나와있는 것처럼 “네트워크”라고 생각한다.

페이스북의 가치가 (소프트웨어) 소스코드에 있는가? 아니다 네트워크다.
페이스북의 모든 소스코드를 당신 손에 쥐어줘도 당신은 페이스북을 넘어서서 SNS 1위 강자로 거듭날 수 없다.

“블록체인 기술은 이미 공개된 기술이고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암호화폐랑은 다른거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페이스북의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거다.

윙클보스 형제가 뭐라 표현했나? “비트코인은 가장 위대한 소셜 네트워크다.” 인터뷰를 위해 끼워맞춘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윙클보스 형제” 라서 아이덴티티에 맞게 표현했다는 점도 물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표현의 80%는 진심이라는 걸 안다.

인류 최초의 문자기록은 소설도 아니고 심지어 시도 아니다. 심지어 사랑 노래도 아니고 신을 찬송하는 종교내용도 아니다. 인류 최초의 문자기록은 “엑셀문서”다. 인류 역사상 원장은 그 자체로 권력의 기반이었다. 분산원장이 세상을 바꿀꺼라는 말에는 그 어떤 과장도 들어있지 않다.

더군다나 분산원장을 넘어 인류가 그 위에 스마트 계약을 돌리고 신뢰가 보장되는 원장을 넘어서 프로그램을 돌릴 것이니 말이다.

신뢰받지 않는 프로그램, 뭐 시장이 있었다. 신뢰받는 범세계적 컴퓨팅이 존재하기 전에는.

그래서 블록체인 기술은 중요하지 않다?

그건 아니다. 위대한 물건의 프로토콜 전쟁을 하는건 “표준전쟁” 과 마찬가지로 엄청 중요한 일 맞다. 다만 본 글에서는 네트워크의 가치를 설파하는데 치중할 뿐이다.

페이스북이 DDT 만든 회사보다 위대한가? 페이스북이 인류 최초로 피임수단을 발명한 회사보다 위대한가? 잘 모르겠다. 시장은 네트워크의 손을 훨씬 많이 들어준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블록체인 기술을 대표로 하는 4차 산업혁명 기술, 심지어 인터넷 기술을 대표로 하는 3차 산업혁명 기술마저도,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만들까 심한 우려와 초조를 갖고 있지만 말이다. 자세한 내용은 영드, 인지 미드인지 모를 <블랙 미러>를 참고하라. 케빈 켈리의 <기술의 충격>도 참고할만하다.

국부유출?

우려하는 마음은 이해한다. 그분들은 암호화폐가 1일 뒤든, 1주 뒤든, 1달 뒤든, 1년 뒤든, 언제든 0으로 폭락할게 너무 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니까. 하지만 정말 세계경제포럼 예측대로 근미래에 세계 GDP의 10%가 퍼블릭 블록체인상에 저장되고 작동하게 될 가능성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면 어떤게 진정 국부유출인지 뿌리부터 재검토가 필요하겠다.

다시 돌아와서, “블록체인 위의 그것” 이란 도대체 뭘까?

영문에서는 대문자 “Bitcoin” 과 소문자 “bitcoin” 이란 단어가 모두 존재한다. 전자는 비트코인 (더) 네트워크를 가리키고, 후자는 전자의 토큰을 가리킨다.

DAC파 주장에 따르면 전자는 기업이고 후자는 주식이다.

뭔 미친 소리냐고 할 수도 있는데, 아래 글을 보면 해석이 나온다:

AI들의 기업

(끝)

과학적 방법이란?

과학적 방법은 하나의 통일된 ‘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수세기에 걸쳐 진화한(그리고 계속 진화하고 있는) 수십 가지 기법과 과정의 집합이다. 각 방법은 사회에서 지식의 통일성을 점진적으로 증가시키는 하나의 작은 단계다. 과학적 방법의 선구적인 발명 중 몇가지를 보자.

  • 기원전 280년 도서관 색인 목록. 기록된 정보를 검색하는 방법. (알렉산드리아에서.)
  • 1403년 공동 저술 백과사전. 둘 이상의 지식을 공유하는 방법.
  • 1590년 통제 실험. 프랜시스 베이컨이 사용했으며 한 가지 변수를 바꾸면서 하는 실험.
  • 1665년 재현 필요성. 한 실험의 결과가 타당하려면 반복될 수 있어야 한다는 로버트 보일의 개념.
  • 1752년 동료 심사를 거치는 학술지. 공유된 지식에 확인과 타당성을 한층 덧붙임.
  • 1885년 무작위 맹검 실험 설계. 인간의 편견을 줄이는 방법이며, 새로운 유형의 정보로서의 무작위화.
  • 1934년 반증할 수 있는 검사 가능성. 타당한 실험은 그것이 틀릴 수 있는 검증 가능한 방식을 지녀야 한다는 카를 포커의 개념.
  • 1937년 통제된 속임약. 참가자의 편향된 지식 효과를 제거하기 위한 실험 수단.
  • 1946년 컴퓨터 시뮬레이션. 이론을 세우고 자료를 생성하는 새로운 방법.
  • 1952년 이중 맹검 실험. 실험자의 지식이 미치는 영향을 제거하는 더 다듬어진 방법.
  • 1974년 메타 분석. 한 분야에서 앞서 이루어진 모든 분석의 이차적 분석.

이런 획기적인 혁신들이 모여서 현대 과학 활동을 낳는다. (내 목적상 정확한 날짜는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발견의 우선권을 둘러싼 다른 여러 주장들을 무시하려 한다.) 오늘날의 전형적인 과학적 발견은 사실들과 반증 가능한 가설, 아마도 속임약과 이중 맹검 설계에 따른 재현 가능하고 통제된 실험, 동료 심사를 거치는 학술지에 실리고 관련된 문헌들이 보관된 도서관의 색인에 실리는 것에 의존할 것이다.

과학 자체와 마찬가지로 과학적 방법도 축적된 구조다.

이 짧은 연대표에 명확히 드러나 있듯이, 우리가 현재 ‘과학적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주요 혁신 중에는 비교적 최근에 이루어진 것이 많다.

이 최근성은 과학에서 내년에 발명될 다른 ‘핵심’ 방법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을 일으킨다.

과학의 본성은 여전히 유동적이다. 즉 테크늄은 앎의 새로운 방법들을 빠르게 발견하고 있다. 지식의 가속, 정보의 폭발, 진보의 속도를 고려할 때, 과학적 과정의 본성은 지난 400년 동안에 그랬던 것보다 다음 50년 동안 더 변화할 것이다. (추가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 몇가지 있다. 부정적인 결과 포함, 컴퓨터 증명, 삼중 맹검 실험, 위키 학술지 등.)

과학의 자기 변형의 핵심에는 기술이 있다. 새 도구들은 정보를 구조화하는 다른 방법들, 새로운 발견 방법들을 가능하게 한다. 우리는 이 조직 체계를 지식이라고 부른다. 기술 혁신이 이루어질수록 우리 지식의 구조는 진화한다.

과학은 새로운 것을 발견함으로써 업적을 이룬다. 그리고 과학의 진화는 발견들을 새 방식으로 조직하는 것이다. 우리 도구들의 조직화 자체도 지식의 한 유형이다.

현재 통신 기술과 컴퓨터의 등장으로 우리는 새로운 앎의 방식에 진입했다. 테크늄이 나아가는 궤적은 우리가 생성하고 있는 수많은 정보와 도구를 더욱 조직하고 만들어진 세계의 구조를 증가시키는 방향이다.

—- 케빈 켈리 <기술의 충격(What Technologh Wants)>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