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회의론 회의론

요즘 메타버스 하이프(hype)도 많지만, 메타버스 회의론도 팽배하다. 메타버스 회의론중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것은 아무래도 <PC Gamer>잡지의 <The metaverse is bullshit>일 것이다. 그 글을 비롯해 메타버스 회의론은 대체로 아래의 논점들로 귀결되는 것 같다.

메타버스는 억지스러운 키워드 장사다?

메타버스 회의론의 가장 대표적인 논점인 것 같다.

“아니 그 전에는 이런 개념도 없었는데, 뭔 2021년부터 갑자기 “메타버스”니 무슨 버스니 하면서 쓸데없는 키워드 장사나 하고 난리야?”

또는 “그거 예전부터 다 있던거네? VR, MMORPG… 뭐 다 새로운거 하나도 없네!”

나는 여기에 그닥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알고있는 인류는 없는 개념에 이렇게나 새로운 이름을 붙이는데 열중하지 않는다. 인류가 이렇게 대규모로 새로운 이름을 붙이는데 열중한다는 것은, 정말 새로운 뭔가가 발견됐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신빙성 있어보인다.

“메타버스”라는 개념은 새로울 게 있다.

“VR” 또는 “가상 현실”과 뭐가 다르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일견 일리 있는 말이다. 문제는 “VR”이라는 단어가 도난당했다는 것이다. “가상 현실”이라는 단어를 처음 만든 사람은 모르긴 몰라도 매트릭스 같은 개념을 두고 이 단어를 쓰지 않았을까 싶다(뇌피셜이긴 하지만 개연성 있지 않나). 문제는 이렇게 거창한 개념을 담던 단어를, 일종의 머리에 쓰는, 무거운, 렌즈 달린, 왼쪽 눈과 오른쪽 눈에 다른 영상을 틀어주는, 자이로 센서가 달려 머리의 움직임에 따라 영상 내용이 바뀌는, 신종 디스플레이 장치가 독점해버렸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제 우리가 진짜 “가상 현실”을 표현해야 할 때는 부득이하게 새로운 단어를 도입할 수 밖에 없게 돼버렸다. 그것이 “메타버스”라는 단어를 개척하게 된 배경의 축일 것 같다.

“가상 현실은 그렇다 쳐도 ‘가상 세계’ 라는 단어도 있지 않았냐?”

“가상 세계”라는 말은 너무 평범한 단어 앞에 붙은 너무 평범한 수식어에 불과하다. 아무도 “가상 세계”가 전문용어라고 느낀 적이 없을 것이며, 이런 단어가 있었다는 것을 의식했던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거의 모든 것이 가상세계이고, 가상 세계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결국 “가상 세계”라는 말은 아무것도 특정지을 수 없는, 별 가치가 없는 용어였던 것이다. 기껏 쳐줘야 “작명 실패”에 불과한 것 같다. 사람들이 “그거 있잖아 레디플레이어 원 같은거” 를 지칭하고 싶을 때 다른 단어를 찾을 수 밖에 없다. 있는지도 몰랐던 “가상 세계”란 말은 다시 꺼내지도 말자.

차이점도 있다. 예전에 “가상 현실”이라는 말만 있을 때, 사람들은 “가상 세계”들의 상호 연결 가능성에 이렇게 진심이지 않았던 것 같다. “가상 세계”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될까? 어떻게 서로 상호작용 할까? 라는 질문들을 지금은 보다 중요시하는 것 같다.

인스타그램 같은 SNS도 메타버스의 일종이라고 하는 주장? 개인적으로 이런 주장들은 물만 흐리고, 문제 논의에 해만 끼친다고 생각한다.

이런 짤도 있다. 그럼 수많은 다른 업종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우리도 메타버스다” 라고 하는 현상도 있던데, 그건 어떻게 설명할건데?

“메타버스”라는 단어는 분명 기존의 여러 기술 트렌드들을 포괄하기 위해 만들어진 “상위 개념”으로서의 포지셔닝도 있다고 본다. 비유를 하자면 마치 2021년에 새롭게 발견된 “통일장 이론” 같은거라고나 할까? 코끼리 코를 만들던 회사들도, 코끼리 다리를 만드는 회사들도, 마침내 “아하!” 하더니 “우리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코끼리였어! 기존에는 단어가 없어 표현하질 못했을 뿐이야” 라는 식으로 기쁨에 들떠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아 물론 투자자들 주머니를 좀 털어볼까 하는 마음들도 아마 있었겠지. 투자자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 기업들은 지속적으로 더 큰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뭐 다들 이 새로운 “코끼리”라는 개념에 만족들 하는 것 같다. 마치 “그래 코끼리 정도는 돼야 우리가 갖고있던 비전의 크기를 다 표현할 수 있지. 역시 ‘코끼리’라는 개념은 훌륭한 개념이었어” 라고 하는 듯 싶다. 투자자들의 주머니들도 반응하기 시작했으니 기업 경영자들도 기쁘지 아니했겠나.

메타버스는 이미 인터넷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해왔다?

뭐 맞는 말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인터넷의 새로운 버전에게 “메타버스”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만약 메타버스가 정말로 인터넷의 새로운 버전이라면 말이다.

인터넷 (정확히 말하자면 “World Wide Web”) 이 탄생하기도 전에 닐 스티븐슨 같은 인류의 선구자들이 그렸던 인터넷의 모습은 우리가 현재 말하는 “메타버스” 와 같은 모습이었다. 예를 들어 높은 퀄리티의 아바타의 존재라든가, 광활한 3D 가상세계라든가, 3D세상을 마치 현실처럼 보여주는 디스플레이 장치로서의 “고글”이라든가. 그 시대의 선지자들은 “뭐 인터넷은 당연히 이래야 하는거 아니야?” 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단지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타협하며 메타버스의 열화 버전, 또는 초기 단계 버전을 참으며 써왔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인터넷이란 뭘까?

아무도 인터넷을 발명한 적 없다. “인터넷”(Internet)이란, 단지 “그물들 사이”, 또는 “그물 그 너머” 같은 소박한 개념을 담는 것에서 시작했을 뿐이다. 인터넷이 현재 모습에 머물러야 한다고 보는 것이야말로 섣부른 것이 아닐까.

월드 와이드 웹이란 뭘까?

뜻풀이를 해보자면 전세계를 아우르는 그물이라고 했지, html, txt, jpeg와 mp4들만의 그물이라고 한정지은 적은 없다. Virtual human들의 그물이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모니터앞에서 타이핑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다?

“모니터가 가장 완벽한 디스플레이 방식이란다. 알파벳 배열이 좀 이상하긴 해도 키보드가 가장 완벽한 문장 입력방식이란다. 마우스가 손목 아픔을 유발하긴 해도 가장 좋은 포인팅 입력장치란다. 터치스크린이라고 알아? 손톱으로 누르는거 말고, 손가락 끝으로 슬쩍 터치만 해도 되는 정전용량 방식의 터치스크린 말이야. 스티브잡스가 발명한건데 손에 쥐는 장치에게는 이것이 최선의 입력방식이란다.”

이런 논조는 별로 건설적이지 않다.

인류는 분명 기계-인간 인터페이스 영역에서 꾸준히 혁신을 이어나갈 것이다. 그런 혁신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비웃는 것이야말로 비생산적인 것 같다.

사람들은 아바타를 싫어한다? 기껏해야 애들이나 좋아한다?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은 언어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비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한 학자, 앨버트 머라이언(Alber Mehrabian)은 비언어가 의미전달의 93%를 차지한다고 말한바 있다.

채팅만으로 충분하다는 주장은 인간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온 주장이다.

“웹캠이 있지 않은가?”

인간들은 웹캠을 진짜 혐오한다. “영상 통화”라는 기술의 하이프가 수십년째 이어졌는데 “영상 통화” 는 여전히 변두리에 있는 소통방식이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었다라는 것을 사람들은 뒤늦게 깨달았다. 문제는 인터넷 통신요금도 아니었다. 심지어 아직도 깨닫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인간들은 그냥 웹캠을 싫어한다.

보다 정확히는, 인간이 웹캠을 싫어하지 않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충분한 해상도, 충분한 저조도 성능의 카메라, 감당 가능한 인터넷 요금 수준, 충분한 인터넷 속도, 괜찮은 조명, 조명 원리에 대한 충분한 지식수준, 괜찮은 외모,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외모, 아 그리고 오늘 아침에 캠을 켤 결정 하기 전에 갑자기 본인의 외모에 질려버리지도 않았어야 한다. 적어도 필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높은 스킬이나, 퀄리티 높은 인공지능 필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아 사람들은 심지어 웹캠에서 배경마저 숨기기를 희망한다.

나에게 월급을 주는 고용주가 Zoom에 접속하라고 강요만 하지 않았다면, 누가 Zoom을 쓰겠는가?

그리고 사람들은 아바타를 너무 좋아한다.

사람들이 아바타를 얼마나 좋아하냐면 SNS에서 자신의 사진이 아닌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프사로 사용한다.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Facebook같은 실명 SNS에서도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프사로 사용한다. 그 정도로 사람들이 가상의 캐릭터를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또 각종 움짤 이모티콘을 봐라. 심지어 이모지를 봐라.

사람들은 심지어 일방적으로 소비하는 영상 캐릭터보다 아바타 캐릭터를 더욱 좋아한다. 게임 캐릭터가 그 예다. Playable Charater이기 때문이다. 상호작용이 보다 다채롭기에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그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은 내가 그 캐릭터 자체였기 때문에 (적어도 그렇게 느꼈었기 때문에) 더욱 유대감이 생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누구도 메타버스가 뭐가 더 나은지 설명하지 못한다?

미래를 예측하기란 아주 어렵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고 하는 편이 현실적이겠다.

하지만 메타버스는 적어도 현재 복수의 두뇌들이 공감하는 보다 나은 인테넷이긴 한 것 같다. 나는 그렇게 해석한다.

One thought on “메타버스 회의론 회의론

  1. 좋은 글 잘 봤습니다. 메타버스 회의론에 대한 회의론이 흥미로워 한번 보게 되었네요. 하지만 메타버스에 대한 부정적인 저의 생각은 바꾸지 못할 듯 합니다. 메타버스라는 키워드를 통해 기존의 빼앗긴 VR 혹은 이러한 가상공간의 유형에 대한 새로운 용어 제시라는 의의가 있다는 것 외에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메타버스가 아이들만이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유치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도 마인크래프트와 같은 흔히 이야기하는 ‘초딩겜’을 즐겨하거든요.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메타버스’가 무엇이 새로운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네요. 매트릭스와 같은 완전 몰입형이 가상공간이 다가오더라도 이것이 새로운 개념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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